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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자원 화재 전산망 장애 한달…총체적 문제 드러나
전원 차단 않고 배터리 잔량 초과…무경험 작업자 투입
쌍둥이 시스템 '이중화' 구축한다더니…예산 '셀프' 삭감
내년 이중화 예산도 반영 안돼…재발 방지책 마련 '속도'
[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과 이용석 행안부 디지털정부혁신실장이 지난달 3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관련 중대본 회의 브리핑에서 허리숙여 인사하고 있다. 025.09.30. ppkjm@newsis.com[서울=뉴시스] 강지은 기자 =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 본원 화재에 따른 정부 전산망 장애가 오는 26일로 한 달을 맞는 가운데, 이번 사태가 전형적인 '인재'(人災)였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불법 하도급을 통해 경험이 전혀 없는 업체가 배터리 이전 작업을 진행하고, 정보 시스템 관리에 필수적인 '이중화' 조치도 미비했던 것으로 파악되면서 총체적 관리 부실이 도마에 올랐다.

정부는 전산망 복구에 총력을 다하는 한편,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전원 차단 않고 배터리 잔량 초과…무경험 작업자 투입

25일 정부와 경찰에 따르면 지난 9월 26일 국정자원 대전 본원 5층 7-1 전산실에서 발생한 화재는 전반적인 작업 부주의와 불법 하도급 문제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화재는 작업자들이 무정전 전원장치(UPS)용 리튬이온 배터리를 지하로 옮기려다 배터리팩에서 불꽃이 튀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확인된 것이다.

현재 정확한 화재 원인은 조사 중이지만, 경찰은 배터리 분리 작업 당시 일부 전원을 차단하지 않았다는 작업자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선반 구조인 UPS 본체에 전기를 공급하는 주 전원 차단기는 내려졌지만, 내부의 배터리끼리 연결된 부속 전원은 끄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원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은 상태에서 배터리를 분리하면 합선이 발생해 화재 위험성이 커질 수 있다.

UPS용 리튬 배터리를 분리할 때에는 남은 전류를 방전시켜 충전 용량을 30% 이하로 낮춰야 하는데, 이러한 규정도 지키지 않았다. 분리 작업 당시 배터리 잔량은 80%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 전기 작업 시에는 전기가 흐르지 않는 절연 제품을 사용해야 하지만, 작업자들은 전동 드릴을 사용하기도 했다.

특히 배터리 이전 공사를 수주한 업체가 관련 규정을 어기고 불법 하도급을 한 정황도 드러났다. 전기공사업법에 따르면 전기 공사를 수주한 업체는 다른 업체에 하도급을 주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국정자원으로부터 낙찰 받은 2개 업체는 제3의 업체에 작업을 맡겼고, 배터리 설치 경험은 있지만 이설 경험이 전혀 없는 작업자들이 투입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경험이 없는 작업자들이 소홀하게 작업을 하다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대전=뉴시스] 강종민 기자 = 지난달 28일 국과수 요원들이 화재가 완진된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2025.09.28. ppkjm@newsis.com

쌍둥이 시스템 '이중화' 구축한다더니…예산 '셀프' 삭감

이번 전산망 마비 사태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는 정보 시스템 '이중화' 미비도 거론된다.

이중화는 화재, 해킹 등으로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서비스가 중단되지 않도록 '쌍둥이'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국정자원은 대전 본원 외에 광주와 대구에 분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중화 체계는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앞서 정부는 2023년 11월 발생한 '행정 전산망 장애'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해 국민 파급도가 높은 1·2등급 정보 시스템은 네트워크, 방화벽 등 모든 장비에 대해 이중화를 단계적으로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올해 국정자원 예산 중 장애 발생 시 즉시 가동할 수 있는 '재해복구(DR) 시스템' 구축 예산은 전체 예산(5559억원)의 0.5%에 불과한 30억원 수준이었다.

이마저도 두 센터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액티브-액티브'(Active-Active) 방식의 DR 예산은 24억원에 그쳤다.

이용석 행안부 디지털정부혁신실장 이에 대해 "DR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만, 큰 규모가 아니라 필요 최소한의 규모로 돼 있거나 데이터 백업 형태로만 돼 있는 것도 있다"며 "시스템별로 조금 다르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소관 부처인 행안부가 스스로 관련 예산 편성을 막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행안부는 지난해 4월 각 부처에 '1·2등급 재해복구시스템 구축 투자 금지' 지침을 내렸다. 일단 시범 사업을 거친 뒤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관련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DR 예산은 각 부처별로 행안부에 요청한다.

행안부는 시범 사업을 통해 모델을 확정한 이후 투자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국가망 사업의 관리 주체인 행안부가 범정부 대책을 내놓고도 사안을 안일하게 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과 이재용 국가정보자원관리원장 등 피감기관 증인들이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의 행정안전부 등 국정감사에서 출석하고 있다. 2025.10.14. kkssmm99@newsis.com

내년 이중화 예산도 반영 안돼…재발 방지책 마련 '속도'

문제는 2026년 예산안에도 이중화 사업 관련 예산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윤호중 장관은 "대전센터와 공주센터의 이중화 구축 시범 사업 예산으로 75억6000만원을 요구한 바 있는데, 확정된 건 29억5000만원"이라며 "(내년도) 정부 예산을 확정할 당시에 이 부분(이중화 사업)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회에서 증액해주시면 기획예산처와 협의해 예산을 확보하고, 모자르다면 예비비를 투입해서라도 필요한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중화 사업 관련 예산은 1조원 넘게 들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정부는 지난 21일 국무회의를 열어 국정자원 화재의 신속한 복구를 위한 예비비 1521억원을 우선 투입하기로 했다.

예비비 내역을 보면 전산 장비 중 서버와 스토리지(데이터 저장장치)는 구매하고, 기타 장비 등은 임차 비용으로 배정해 1303억원을 편성했다.

시설 구조 진단과 보강, 전기 시설 교체 등 기반 시설 복구비에는 158억원을 배정했다. 데이터 분석·복구 등 국정자원으로 투입되는 인력에 대한 인건비도 63억원 편성했다.

정부는 현재 국가 인공지능(AI) 전략위원회 산하에 'AI 정부 인프라 거버넌스 혁신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이중화 구축 등 재발 방지책도 마련하고 있다.

TF에는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을 비롯해 정부와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해 복구 계획부터 민간 클라우드를 활용한 정부 시스템 재설계 등 다양한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윤 장관은 "화재 피해를 입은 국가 정보 시스템은 복구 여건과 대국민 파급 효과 등을 고려해 최적의 방식으로 복구가 이뤄지도록 하는 한편 재방방지 대책, 시스템 관리체계 재설계 방안 등을 관계 기관과 함께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윤호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서울상황센터에서 열린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행정정보시스템 화재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5.10.20. scchoo@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