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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4일 영국 런던 쇼디치의 연구소에서 만난 맥스 재밀리 혹스턴 팜스 CEO. ‘Proudly Fatty’라고 쓰인 회사 슬로건이 눈에 띈다. 우리말로 옮기면 ‘눅진한 맛의 자부심’ 정도나 될까. photo 이용규 기자


"대체육은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사탄의 가래 같은 거고, 두부는 자연적으로 태어난 주님의 은총이야."

한국에서는 '콩고기'에 그 이미지가 머물러 있어서일까. 뭇사람들 사이에서 대체육 얘기를 꺼낼라 치면 이런 반응이 돌아올 때가 있다. 화학물질인 필로폰과 천연 마약 코카인을 각각 빗댄 드라마 '수리남'의 대사처럼. 우리의 인식 속에 대체육이란 '애써서 만든 건 알겠지만, 채식을 해야겠다면 두부라는 훌륭한 상위호환재가 있잖아?' 같은 생각이 드는 무언가일지도 모르겠다. 선택의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되는 인공적인 무언가.

도축 없이 줄기세포를 키워 살코기를 만드는 배양육, 그 지상과제도 사업성이니 친환경이니 하는 문제보다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동물을 살리고 지구도 살리고… 다 좋은데, 그래서 '맛'이 있냐는 것이다.

그 힌트를 영국 런던에서 찾았다. 저 유명한 타워브리지에서 북서쪽, 지하철로 예닐곱 정거장을 가면 '쇼디치' 지역이 나온다. 20여 년 전 한국 서울의 홍대처럼, 비싼 임대료에 밀려나 둥지를 튼 젊은 예술가와 힙스터가 몰려 있는 곳이다. 문득문득 들려오는 록클럽의 음악 소리에 맥주를 홀짝이는 청춘들이 곳곳에 그래피티가 이지러지는 골목을 쏘다니는 곳. 인공 지방을 개발해 진짜 고기의 풍미를 재현하려는 스타트업, '혹스턴 팜스(Hoxton Farms)'의 연구소는 그런 곳에 있었다. 교외의 공장이 아니라.

혹스턴 팜스 연구원들이 바이오리액터를 앞에 두고 대화하고 있다. photo 혹스턴 팜스


"지방을 바꾸면 맛도 영양도 잡는다"

연구소를 겸하는 사무실에 들어서니 서울의 공유 오피스 같은 세련된 분위기가 났다. 창립자이자 CEO인 맥스 재밀리(Max Jamily) 박사는 "음식을 먹는 곳에서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여느 배양육 회사처럼 혹스턴 팜스도 줄기세포를 배양액 속에서 키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은 지방, 그것도 동물성 지방을 개발한다는 것이다. 재밀리 박사는 "우리 지방은 진짜 돼지고기 지방만큼이나 맛있다"며 "겉모습, 요리하는 방법, 맛은 고기와 같지만 더 건강하다"고 했다. 자신들이 만드는 배양 지방에는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이 적다고도 했다.

그 말대로라면 진짜 고기처럼 맛있는데 성분은 더 건강하다는 것이다. 가능한 것일까. 우선 고기를 만드는 종합 육류기업이 아니라 '지방'에 천착하는 이유부터 천천히 묻기로 했다. 런던의 모든 배양육 스타트업이 단백질, 또는 고기 완제품을 만드는 상황에서.

"고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지방입니다. 지글지글(sizzle)하는 것, 냄새, 맛 모든 걸 다 훌륭하게 해 주죠. 더 중요한 건 지방은 공중보건의 영역에 있다는 거예요. 여러 나라에서 위기(Health Crisis)를 초래하잖아요. 건강하지 않으니까요. 지방은 완전히 마법 같은 존재예요. 레시피에서 매우 적은 양만 바꿔도 제품의 맛과 영양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겁니다. 생산량도 안정적이죠. 실제 동물은 질병에 걸리고, 생산 과정의 비위생도 문제니까요. 기술적으로도 효율적이고요. 헬스장에 가서 근육을 키우는 것보다, 그냥 지방을 만드는 게 더 쉽잖아요?"

재밀리 박사의 말이 이랬다. 고기를 많이 먹어서 문제가 되는 건 '나쁜 지방' 때문이니, 지방을 '건강하게'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또 풍미가 없다면 고기가 아니니, 기름기 줄줄 흐르는 고기의 참맛을 추구한다는 얘기였다. 혹스턴 팜스가 그 실현을 위해 사용하는 건 배양 장치인 '바이오리액터'였다. 여기서 그들 고유의 지방 제품인 '혹스턴 팻(Hoxton Fat)'을 만드는 것이다.

혹스턴 팜스 연구원들이 만든 배양 지방이 다양한 육류 요리에 사용된다. photo 혹스턴 팜스


정육기업 요구대로 성분 커스터마이징

돼지에서 추출한 극소수의 줄기세포를 바이오리액터에 넣고, 이 (지방)세포의 성장과 반응을 촉진해 지방을 뽑아낸다. 원천은 줄기세포 몇 '개'면 된다. 재밀리 박사는 "한 번의 독립 추출(isolation fire)만 하면 결코 그 동물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동물을 죽일 필요도 없고, 이론상으로는 한 마리에서 뽑아낸 세포로 전 세계를 먹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오리액터는 쉽게 말해 내용물을 휘저어 섞는 강철 용기인데, 배양된 세포들이 고르게 떠오르면서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받게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강철로 된 대형 탱크를 사용하지만, 혹스턴 팜스는 자신들이 개발한 '모듈형' 바이오리액터를 사용한다고 했다. 용량을 키우고 싶다면 레고를 조립하듯 병렬로 확장,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용량을 늘리는 기전이 마치 AI 데이터 센터 서버와도 같다. 도심지에 위치한 스타트업다운 신선한 발상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방은 동물성 지방과 동일하다. 하지만 성분은 완전히 다르다. 트랜스지방, 콜레스테롤, 포화지방 같은 성분은 줄이고 오메가3 같은 고급 지질은 비율을 높인다. 소비자가 아닌 기업을 대상으로 거래하는 B2B 기업인 혹스턴 팜스는 식품제조 기업, 정육 기업 등에 이를 판매한다. 지방을 전통적 동물 단백질과 배합해 고기를 만들 수도 있고, 식물성 단백질과 섞을 수도 있고, 배양 단백질과 섞을 수도 있다. 때문에 판로는 넓다. 동물성 지방이 사용되는 곳은 고기뿐 아니라 수프, 소스 등 다양하다.

고객사는 자신들이 원하는 성분과 맛 개발을 요구할 수 있다고 한다. 재밀리 박사는 "맛이 강렬하든 심심하든, 등심의 맛이든 베이컨의 맛이든 모두 가능하다"며 "예를 들어 한국 돼지고기는 영국보다 맛이 부드러우니, 나라별로 취향을 맞춤 설정하는 것도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개발해 둔 '표준' 지방도 매우 맛있지만 고객들은 자신들의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며 "우리의 AI 기술이 그 커스터마이징을 돕는다"고 부연했다.

혹스턴 팜스의 바이오리액터를 통한 연간 지방 생산량이 20~50㎏ 수준이고, 액체 단위로는 최대 500L다. 레시피에 따라 다르지만 지방의 포함량은 10~40% 정도인데, 지방 제품을 10㎏ 납품하면 고기로 만들어지는 완제품은 최대 1t이 되는 셈이다. 재밀리 박사는 "1년 전에는 겨우 그램(g) 단위로나 지방을 만들 수 있었다"며 "1000배 가까이 생산량이 늘어난 것으로, 내년에는 연간 생산량 100㎏에 도달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지금 배양 지방 시장에서는 생산량이 가장 많다고도 했다.

"한국 시장 흥미로워… 협업하는 기업도"

배양육 기술은 2020~2021년 무렵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스타트업이 우후죽순 생기고 투자가 쏟아졌다. 그러나 신기술 시장이 으레 그렇듯 당국의 규제 등 걸림돌이 적지 않아 영미권에서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많지 않다. 혹스턴 팜스는 2020년 설립, 2021년부터 350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재밀리 박사는 "우리처럼 실제로 성과를 내는 기업들은 그다지 어려운 상황이 아니다"라며 "내년쯤 (상용화 단계에서 투자를 유치하는) 시리즈 B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혹스턴 팜스의 제품은 바로 내년쯤 상용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기술도 양산도 준비가 다 돼 있지만, 역시 뚫어내야 하는 것은 당국의 허가였다. 그들은 영국, 미국, 싱가포르에서 내년 출시를 바라보고 있다. 나라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배양육 판매에 대한 입법이 따로 필요하지 않은 국가부터다.

이를테면 영국에서도 배양육 기술은 불법이 아니지만, 아직 식품으로서 판매 허가를 받은 회사는 사료용 배양육을 개발하는 '미틀리(Meatly)' 한 곳이다. 개별 제품과 회사가 판매 허가를 득하면 되는 것이다. 혹스턴 팜스도 영국의약품건강관리규제청,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에 서류를 보내 놓고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1년에서 18개월까지 소요되는 작업이다. 전망은 어둡지 않다고 했다. 재밀리 박사는 "우리는 규제 샌드박스 참여 기업으로 선정된 6개 회사 중 하나"라고 말했다.

재밀리 박사의 말을 듣다 보니 한국 사회가 소고기 수입 문제를 놓고 큰 홍역을 앓았던 게 떠올랐다. 검역 문제는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으로서는 '지방'을 운송하는 데 검역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영국 당국에서 수출 허가를 받아둔 상태고, 일본이 수입을 허용한 유일한 회사가 우리입니다. 수출을 하게 된다면 세계 최초죠."

배양육 회사의 당면 과제는 역시 비용과 규모다. 재밀리 박사의 도전 과제도 대규모 양산에 있었다. 그는 "지금 런던에서 500L 지방을 만드는 수준이지만, 최소 1만L를 만들어야 한다"며 "아시아에 대규모 설비를 둘 곳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 생산을 함께할 파트너를 한국에서 찾고 있다고도 했다. 이미 협업에 나선 한국 기업도 있다고 했지만 어느 기업인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재밀리 박사는 생명공학 박사 출신으로 병원에서 의학 연구를 하던 인물이다. "세포를 관찰하던 과학자에서 식품회사 경영자가 됐습니다. 먹지 말아야 할 세포를 보다 먹어야 하는 세포를 연구하게 됐네요. 완전히 커리어가 달라졌죠. 전 세계를 먹여살리는 것은 길고 도전적인 여정이에요. 세계 최대 지방 공급업체가 되고자 합니다. 당신의 식사가 맛있고 건강할 수 있도록 세계를 변화시키는 게 목표예요."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