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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 고등어
[노르웨이 수산물 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인공지능(AI)이 완벽해질수록 인간의 감정은 더욱 귀해진다. 기술의 정밀함이 최고조에 이를수록, 인간의 미묘한 감각이 지닌 가치는 오히려 드러난다. 효율이 아닌 감정의 품질이 시장의 품격을 결정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노르웨이의 고등어 산업은 이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나라는 수십 년 동안 고등어의 품질을 1등급부터 7등급까지 세분화하여 관리해왔다. 크기와 윤기, 비늘의 균질도, 지방 함량, 색상, 체형 등 모든 기준이 수학적 정밀도로 측정된다. 이 가운데 1등급에서 6등급까지는 인공지능이 완벽하게 처리한다. 자동화된 센서와 AI 분석 시스템이 초 단위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로봇이 생산 라인을 움직인다. 그곳은 효율과 속도, 정확함의 세계다. 그러나 최상위 등급인 7등급만큼은 여전히 인간의 손을 거친다.

수십 명의 전문가가 직접 고등어를 손에 들고 관찰한다. 눈빛의 반사도, 비늘의 질감, 빛의 결, 냄새의 깊이까지 감각으로 판단한다. 어떤 데이터도 이 과정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 인간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온도, 경험으로 체득한 직관, 그리고 그날의 공기 속에서 감지되는 미묘한 차이. 이 영역은 기술이 침투할 수 없는 감정의 세계다.

그렇기 때문에 7등급 고등어는 상품 가치만이 아니라 예술의 결과물로 평가받는다. 미슐랭 셰프들의 주방으로 향하며, 그들은 '인간의 감별이 깃든 자연의 결정체'로 이 생선을 대한다.

고등어의 등급 체계는 기술 문명과 인간 감각이 공존하는 현실의 축소판이다. 완벽한 자동화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최종 판단자이자 감정의 품질 관리자다.

AI의 발전은 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알고리즘은 학습을 통해 예측을 정교화하고, 생산은 점점 더 무인화된다. 효율은 놀랍게 높아졌지만, 그만큼 인간의 존재감도 옅어지고 있다. 많은 글로벌 플랫폼이 인간의 창작과 감정을 데이터로 축적해 자산화한다.

개인은 데이터를 제공하지만, 그 정보를 통제할 권한은 기업이 갖는다. 이 비대칭 구조 속에서 인간의 창의력과 감정은 생산 자원으로만 소비된다.

그러나 기술이 절정에 다다를수록 '인간다움'의 가치가 새롭게 부상한다. 감정, 공감, 서사적 상상력 같은 요소가 브랜드와 작품의 신뢰를 결정짓는 시대다. 효율이 높을수록 사람들은 느림의 진심을 찾고, 알고리즘이 완벽할수록 인간의 불완전함을 그리워한다. 인간은 여전히 '마지막 판단의 주체'로서 시장의 품격을 완성한다.

이 흐름을 되돌리는 기술적 기반이 바로 웹 3.0이다. 중앙화된 플랫폼에 갇힌 데이터가 개인에게 돌아오고, 블록체인이 그 소유를 인증한다. 이렇게 해서 AI는 지배자의 위치가 아니라 협력자의 자리로 이동한다. 즉, 인간의 손끝에서 발휘되는 직관과 감정을 확장하는 도구로 기능하는 것이다. 기술은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적 본능을 극대화하는 거울이 된다.

'감정의 품질'을 산업의 마지막 기준으로 삼는 사회는 철학적 이상(理想)만을 추구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패션, 요리, 미디어, 금융 등 여러 산업에서 소비자 신뢰를 결정하는 요소는 기술의 완성도가 아니라 '인간의 손길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로 이동 중이다.

정교한 알고리즘이 만든 추천 시스템보다, 사람의 스토리가 담긴 추천 한 줄이 더 큰 신뢰를 얻는다. 이 현상은 취향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감동할 수 있는 구조가 유지돼야 시장이 지속 가능하기 때문이다.

AI 시대의 진짜 혁신은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감정의 해석력에서 나온다. 효율의 가치는 일정한 한계에 다다랐고, 남은 경쟁의 무대는 '공감의 깊이'다. 따라서 AI는 반복과 계산을 담당하고, 인간은 여전히 마지막 감정의 품질을 관리한다. 그 판단의 한 줄이 작품의 품격을 완성하고, 브랜드의 신뢰를 지킨다.

AI가 모든 데이터를 통제하는 구조 속에서도, 인간의 감정은 여전히 해석의 마지막 보루로 남는다. 노르웨이의 7등급 고등어가 그 증거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윤택함, 냄새로만 구별되는 숙성의 미묘함, 손끝으로 느끼는 지방의 탄력. 이 모든 것은 인간의 감정이 개입돼야만 구별할 수 있는 차이다.

효율의 끝에서 되살아나는 감정의 미학이다.

이 시대의 과제는 기술을 '인간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기술이 인간의 자리를 빼앗지 않도록, 인간이 기술의 의미를 재정의해야 한다. 감정의 세계를 데이터로 변환하되, 그 해석의 주체는 인간으로 남겨야 한다. 그래야 AI는 인간의 경쟁자가 아니라 협력자가 될 수 있다.

결국 인간의 마지막 품질은 감정이다. 냉정한 알고리즘의 세계에서도, 진심으로 다가오는 감동이야말로 변하지 않는 가치다. 효율보다 진심, 속도보다 품격. 그 미세한 감정의 결이야말로 기술이 모방할 수 없는 인간의 유산이자, 미래 문명의 중심이 될 것이다.

전태수 웹 3.0·블록체인 전문가

▲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장. ▲ 한국인터넷미디어윤리위원회 이사장. ▲ 세계스타트업포럼 대표.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