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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은 우리 삶 곳곳을 바꿔놓고 있다. 부동산 공인중개사들도 이제는 AI에게 계약서 초안 작성을 부탁한다. 이런 흐름에서 언론도 예외일 수 없다. 주간조선 창간기념호의 커버스토리 'AI 편집국'과 '주간조선 편집국'의 취재 대결은 'AI 시대 언론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란 질문에서 출발했다. 이미 언론계 곳곳에서 AI를 활용하는 사례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날씨와 기상, 증권, 가상화폐 등 여러 분야에서 단신성 스트레이트 기사를 AI가 작성한 지 오래다. 하지만 보다 긴 호흡으로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정보를 얻어내고, 팩트를 체크해가며 기사를 쓰는 탐사보도의 영역도 AI가 대신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래서 주간조선은 창간 57주년을 맞아 이 영역에 도전했다. 현재는 완벽하게 그 역할을 대신 할 수 없을지라도 그 가능성과 한계를 확인해보고자 했다. 주간조선은 편집장의 편집방향을 학습한 AI 편집장과 기자를 만들고, 이를 통해 기사를 작성하기로 했고, 인간 기자도 같은 주제를 가지고 취재하고 기사를 쓰기로 했다.

지난해 9월 10일 사람의 개입 없이 100% AI 기자들로만 구성된 뉴스 미디어 '언블록미디어'가 창간했다. 가상화폐 분야를 주로 다루는 언블록미디어는 세계 최초로 AI 에이전트로 뉴스를 취재하는 일선 기자부터, 기사를 수정 보완하는 편집자까지 모두 AI 에이전트로 이뤄져 있다. 언블록미디어의 기자 AI 에이전트는 블록체인·AI 전문 매체 블록미디어와 AI·블록체인 기술 기업 커먼컴퓨터가 공동으로 설계하고 제작했다. 주간조선은 언블록미디어 측에 제안해 시사나 탐사보도 분야도 AI편집국으로 운영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확실하지 않으나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답변을 받았고, 지난 7월부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서울 당산동에 위치한 언블록미디어 사무실에서 개발자 최동녘씨가 주간조선 AI 편집장 개발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photo 박혁진


AI 보도의 가능성과 한계

담당 개발자와 면담을 통해 AI 편집국 구성을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매체의 방향, 주제 선정, 기사의 형태와 작성법까지를 결정해야 할 AI 편집장을 만들어내는 것이란 합의에 도달했다. AI 편집장이 먼저 탄생하면 그 알고리즘을 다시 학습해 기사를 작성할 AI 기자가 만들어지는 순서였다.

최초의 작업은 편집장이 어떤 편집 방향을 가지고 매체를 만드는지를 AI에게 학습시키는 일이었다. 언블록미디어 측은 '편집장이 생각하기에 이상적인 기사'란 무엇인지, '어떤 글이 훌륭한 글인지' '주간조선 편집장으로서 생각하는 매체의 이상적인 기사가 무엇인지' 등을 비롯한 수십 개 질문을 보내왔고, 몇 주간에 걸쳐 여기에 대한 답을 작성했다.

담당 개발자는 이를 바탕으로 '주간조선 현 편집장의 편집방향이 담긴 AI 편집장 기본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알고리즘 작성은 '챗GPT'와 '구글 제미나이'를 활용해 이뤄졌다. 이미 많은 기자들이 AI를 활용해 아이디어를 내고 기사를 쓴다. 이런 아이디어와 기사에는 여전히 AI의 영향을 받았다는 냄새가 풍기고, 또한 AI로 작성한 기사를 걸러내는 플랫폼도 나와 있는 실정이다. 이를 넘어서는 보다 정교한 그리고 인간 편집장의 편집방향이 담긴 AI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생성형AI 내 별도의 플랫폼을 활용해야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결과물은 기존 기사를 짜깁기하는 수준에 머문다. 필자는 수십 개의 주간조선 단독 기사와 심층기사를 선정하고, 이 기사가 왜 좋은 기사인지를 하나하나 입력했다. 이런 피드백을 계속해서 AI에게 학습시켰다. 적게는 몇 차례, 많게는 수십 차례 이러한 질문과 피드백을 반복하면 점차 AI 편집장의 발제와 기사가 정교해진다.

이런 과정들을 거쳐서 AI 편집장의 사고 구조가 담긴 알고리즘이 탄생했다. 알고리즘 한 부분만 아주 단순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기사 가이드]

1. 기사의 핵심 가치(Core Values): 기사의 근간이 되는 작성의 이유

2. 기사의 유형 및 접근 방식: 주간조선 기사의 작성 결

3. 기사의 구조적 요건: 기본적인 기사 구조

4. 기사의 기대 효과: 어떤 목적으로 기사를 작성하는가

[개별 작성 가이드]

·서사 중심 기사 가이드

·인물 중심 기사 가이드

·심층 분석 기사 가이드

각각의 주제 안에는 편집장으로서 생각하는 시사주간지에서 다뤄야 할 기사의 요건과 구성 등이 담겼다. 이는 편집장 개인이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기사의 판단 기준을 정리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보다 꼼꼼한 학습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1. 기사의 핵심 가치(Core Values)

기사 작성의 근본이 되는 원칙으로, 기사가 지향해야 할 최우선 목표

① 단독성(Exclusivity): 다른 어느 매체에서도 보도하지 않은 새로운 팩트를 가장 먼저 알리는 것. 이는 매체의 영향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② 심층성(In-depth): 일간지가 다루기 힘든 사안의 이면, 배경, 맥락, 향후 전망까지 깊이 있게 파고드는 것. 주간지의 시간적 이점을 활용해 사안을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

③ 의제 설정(Agenda-Setting): 사회가 주목해야 할 새로운 이슈를 발굴하거나, 기존 이슈에 대한 논의의 방향을 전환시켜 공론장을 이끌어가는 능력

④ 시의성(Timeliness): 기사가 발행되는 시점에서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안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정도를 의미. 단독 보도가 시의성과 결합될 때 파급력은 극대화

2. 기사의 유형 및 접근 방식(Article Types & Approach)

핵심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구현하는지에 따라 기사의 유형이 결정됨

① 권력 감시형 특종

정의: 정치·경제·사회 등 권력 핵심의 비리, 정책 결정 과정의 문제, 공개되지 않은 사실 등을 단독으로 밝혀내는 기사

특징: 신뢰도 높은 내부 제보, 문서, 증언 등을 바탕으로 하며, 사회적 파장이 가장 큼

② 쟁점 분석형 탐사보도

정의: 사회적으로 첨예한 갈등이나 중요한 현안에 대해 표면적인 사실 나열을 넘어 구조적인 문제와 본질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기사

특징: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취재하고 데이터를 분석하여 독자에게 깊이 있는 통찰력(Insight)을 제공

앞의 내용들은 전체 알고리즘 중 일부분이었다. 이외에도 팩트체크를 어떤 식으로 해서 AI의 가장 큰 단점인 부정확한 정보를 걸러낼 것인지를 학습시키고, 글의 작성 방식 등 편집장으로서 고려해야 할 거의 모든 부분이 담겼다.

이런 과정들을 거쳐 '주간조선 AI에디터'란 이름의 AI 편집장을 만들었다. 여기에 언론사에서 수습기자들에게 기사 작성법을 가르치듯 스트레이트 기사, 인터뷰 기사 등 다양한 종류의 기사 형태들을 입력하면서 AI 기자를 만들었다. 주간조선의 경우 다양한 기자들을 만들어 내는 데까지는 가지 못 했지만, 언블록미디어의 경우 이미 매일 일정한 시간에 AI 편집장과 AI 기자들이 회의를 한다. 회의 과정은 텍스트를 통해 개발자와 인간 편집장이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날의 가상화폐 동향과 관련한 뉴스나 키워드 등을 분석해 기사의 주제를 정하고 이를 기자마다 다른 시각으로 작성하는 방식이다. 언블록미디어 측 관계자는 "기자마다 역할이 다르고, 기사 쓰는 형태도 다르다"며 "어떤 기자는 자료를 찾고 이를 구조화하는 데 강점이 있다면 어떤 기자는 글을 쓰는 데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주간조선의 경우 AI편집장에게 기사 쓰는 방법도 학습시켜 편집장과 기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게끔 했다. 또한 시사주간지의 기사는 가상화폐나 시황, 날씨 전달 같은 단신성 기사보다 훨씬 고도의 가치판단이 들어가고 충실한 팩트를 전달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주간조선 AI편집장이 이러한 영역들을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지를 계속 점검했다. 몇몇 현안들을 가지고 기초적인 기사 작성을 했고, 여러 차례의 피드백을 거쳐 AI 편집장을 진화시켜 갔다.

팩트체크 알고리즘 학습

AI 편집국이 시사 보도의 영역을 얼마만큼 숙련되게 다룰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간' 취재기자들과 하나의 사안을 놓고 각각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주간조선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재명 정부의 초강력 부동산 규제' 정책을 주제로AI 기자와 인간 기자들이 각각 주제 선정부터 기사 작성까지 나눠서 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개헌이나 마약과 같은 주제들을 다뤄볼까도 했지만, 가장 시사성 있는 주제를 다뤄야만 AI 편집국의 대응 속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주간조선에서는 이정현 기자와 서하나 기자가 투입됐다. 이 기자는 부동산 분야 박사 학위 소지자였고, 서 기자도 평소 부동산 분야에 많은 관심을 나타내 왔다. 이들은 회의 끝에 이재명 정부의 초강력 부동산 규제 정책을 총 3꼭지로 나눠 르포와 인터뷰에 초점을 맞춰 기사를 작성했다.(40~45쪽 참조)

AI 편집장에게 역시 같은 주제를 주고 어떤 기획을 할 것인지만 입력했다. AI 편집장은 그동안 학습한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온라인상에 있는 자료를 분석하고, 주간조선 편집장이 선호할 만한 기사의 주제 두 개를 제시했다. 통계를 바탕으로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인해 가장 피해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례를 통한 스토리텔링 기사와, 반복되는 부동산 정책 실패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해외사례를 별도의 꼭지로 나누어 기사 아이디어를 냈다.(34~38쪽 참조) AI 편집장은 곧바로 AI 기자에게 해당 주제를 주고 기사 작성을 지시했다. 기사를 뽑아내는 시간은 불과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AI와 인간의 차이

주간조선 편집국 기자와 AI 편집장 주도로 생성해 낸 기사의 차이는 명확했다. AI 기자가 쓴 기사라는 걸 알려주지 않고, 언론계 선배들에게 기사를 보여주니 대부분 "기사가 좋다"면서도 "현장감이 떨어진다"는 피드백을 줬다. AI 기자가 쓴 기사라는 걸 알려주자 "기자들 앞으로 힘들어지겠다"고 했다. AI는 과거 사례를 중심으로 스토리텔링에 집중했다. AI 기사는 절대 흉내낼 수 없는 현장감은 인간 기자가 쓴 기사의 가장 돋보이는 점이었다. 다만 전체적인 부동산 정책의 조망과 대책에 있어서는 AI가 설득력이 있었다.

어느 것이 나은지는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다만 AI의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도 이번 실험을 통해 확인한 수확이었다. 기자들이 앉아서 자료를 검색하느라 컴퓨터와 씨름하는 것은 더 이상 독자의 선택을 받기 어려워졌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기자들이 만나는 전문가들도 결국은 과거의 사례를 바탕으로 해결책을 찾기 때문에 어설픈 분석기사의 가치도 점점 떨어질 전망이다. 다만 확인된 한계를 바탕으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강점들을 살려낸다면, 독자들이 AI 시대에도 여전히 언론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를 입증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