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경제]
구글이 양자컴퓨터 혁신을 앞당기는 새로운 연구성과를 발표했습니다. ‘슈퍼컴퓨터 연산속도를 얼마나 앞질렀다’는 식의 양적 진전을 넘어 실제 학계에서 다뤄지는 실용적 문제를 풀어 상용화 가능성을 열었다는 질적 진전까지 이뤘다는 건데요. 실제 신약이나 신소재 같은 물질 구조 분석을 위한 문제를 양자컴퓨터가 풀 수 있음을 선보였다는 데 구글은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구글 퀀컴 인공지능(AI) 연구진은 23일(현지 시간) ‘다체 핵 스핀 메아리를 통한 분자 기하학의 양자 계산’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사전 논문 사이트 ‘아카이브’에 공개했습니다. 제목은 복잡하지만 본문을 짧게 요약하면 구글 양자컴퓨터 칩 ‘윌로’가 ‘시간역행상관자(OTOC)’라는 계산법을 응용한 양자 알고리즘을 통해 톨루엔 분자의 핵자기공명(NMR) 데이터를 기존과 맞먹는 수준으로 정밀하게 분석해냈다는 얘기입니다.
NMR은 원자가 자기장 안에서 특정한 반응을 일으켜 에너지를 방출하는 현상입니다. 원자로 이뤄진 물질 기본단위인 분자는 구성 원자와 그들의 결합 구조에 따라 고유한 형태의 에너지를 방출합니다. 이 에너지를 분석하면 분자를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도 구조, 즉 어떤 원자들이 서로 어떤 거리와 각도로 결합돼 있는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를 응용하면 신약 물질 발굴을 위한 단백질 구조 분석이나 신소재 특성 분석도 할 수 있겠죠.
연구진은 이 방식으로 양자칩에 톨루엔 분자의 구조 계산을 시켰습니다. 톨루엔은 탄소 6개가 육각형 구조인 벤젠 고리를 이루고 이 고리의 6개 꼭짓점에는 각각 수소 5개와 메탄 1개가 붙어있는 구조를 가집니다. 메탄은 다시 탄소 1개와 수소 3개가 삼각뿔 모양을 이루는 물질이고요. 연구진은 구조 예측의 일환으로 이 중 서로 인접한 특정 꼭짓점 2개에 각각 붙은 두 수소 원자 간 거리(ortho-meta H-H distance, Zom)를 양자칩이 얼마나 잘 측정하는지를 봤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양자칩은 이 거리가 2.44±0.04Å(옹스트롬)이라고 계산했습니다. Å은 원자 지름을 재기 위한 길이 단위로 1Å은 0.1㎚(나노미터), 즉 100억 분의 1m에 해당합니다. 고전적 시뮬레이션, 즉 슈퍼컴퓨터 계산으로 Zom는 2.45±0.02Å이고요. 기보고된 수치는 2.46±0.01Å입니다. 기보고된 수치와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보면 양자 계산이 고전적 계산보다는 조금 덜 정확하지만 실용적 문제 계산에서 이 정도 정확도면 양자컴퓨터로서는 상당한 진전이라는 게 논문의 취지입니다.
기존 양자컴퓨터 연구들은 ‘무작위 회로 샘플링(RCS)’처럼 특수한 문제 해결능력으로 양자컴퓨터 성능을 측정해왔습니다. 이 기준으로 슈퍼컴퓨터보다 뛰어나다고 해봤자 실험 조건을 두고 의구심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겠죠. 그래서 구글이 2019년부터 슈퍼컴퓨터를 능가하는 양자컴퓨터 성능을 뜻하는 ‘양자우위’ 달성을 주장했을 때 경쟁사 IBM이 반박하는 등 학계에서는 논쟁이 계속돼 왔습니다. 그런데 양자컴퓨터 맞춤이 아니라 NMR이라는 연구현장에 이미 주어진 문제도 양자컴퓨터가 잘 해결할 수 있음을 구글이 보여준 거죠. 구글은 5년 내 배터리 등 분야에서 응용 사례 발굴, 즉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최재혁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장은 “기존 양자컴퓨터는 원자 2개짜리 수소 구조를 분석하는 수준”이라며 “톨루엔은 단백질 같은 복잡한 물질 분석으로 갈 수 있는 중간 단계로서 상당한 진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한상욱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양자정보연구단장도 “양자컴퓨터가 ‘문제를 위한 문제’가 아닌 실용적 문제를 풀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구글은 이날 이와 관련한 다른 논문 한편도 ‘네이처’에 정식 발표했습니다. OTOC 양자 알고리즘 ‘퀀텀 에코스(양자 메아리)’를 공개하고 이를 양자칩에 적용했더니 현존 최강 슈퍼컴퓨터 ‘프론티어’보다 RCS 연산 기준 1만 3000배 빠른 속도를 달성했다는 내용입니다. 구글은 이번 연구성과 2건을 토대로 사상 최초로 ‘검증 가능한 양자우위’를 달성했다고도 강조했습니다. 그저 자기네만의 주장이 아니라 반복 실험을 해도, 심지어 퀀텀 에코스 알고리즘을 탑재하기만 하면 다른 양자컴퓨터에서도 동일한 성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번 연구에는 이달 초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양자컴퓨터 연구 선구자 미셸 드보레 구글 퀀텀AI 수석과학자도 참여했습니다(참고: 원자 세계의 양자역학을 현실로···노벨상 받은 양자컴 선구자들 [김윤수의 퀀텀점프]). 구글은 이 같은 인재 영입에 더해 지난해 12월 양자컴퓨터의 고질적 난제인 양자오류 문제를 해결한 신형 양자칩 윌로를 공개하며 글로벌 양자컴퓨터 경쟁에서 주도권 싸움을 걸었습니다. 중국 역시 양자과학의 아버지 판젠웨이 중국과학원(CAS) 원사 주도로 윌로와 비슷하게 공개했던 자체 양자칩 ‘주총즈 3.0’을 이달 양자 클라우드 플랫폼에 연동하며 본격 상용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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