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672966_001_20251108120110588.jpg?type=w800

2022년 3월 5일 오전 운동하는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맨발로 흙길을 걷고 있었다. ‘맨발로 걸으면 좋나요?’ ‘따라와 봐요. 알려줄게’. 따라나섰더니 ‘가장 좋은 게 잠을 잘 잔다’고 했다. 당시 수면 장애가 다시 시작된 경기 연천경찰서 백학파출소 박경운 경감(56)은 다시 “정말 잠을 잘 자나요?”라고 물었다. ‘해보면 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날 밤 근무를 위해 낮에 오수(午睡)를 청하는데 정말 기적같이 1시간 꿀잠을 잤다. 정신도 맑아졌다. 박 경감은 그때부터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970일 넘게 맨발 걷기를 하고 있다.
경기 연천경찰서 백학파출소 박경운 경감이 밤에 집 근처인 경기 파주 운정호수공원에서 맨발 걷기를 하고 있다. 파주=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32년 차 경찰공무원인 박 경감은 2016년부터 경찰청 경찰 생명지킴이(자살 예방) 동료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년 전 자살 직전까지 갔던 경험을 되살려 경찰들의 자살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닉네임은 ‘긍정폴’이다. 경찰은 전체 공무원의 두 배가 넘는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강원 영월 출신인 그는 어렸을 때부터 산을 뛰어다니며 놀았고, 초등학교 시절 축구선수로 활약했다. 사회생활 하면서도 축구와 탁구, 테니스, 족구 등을 즐겼지만 정신적 스트레스에 육체 건강은 큰 의미가 없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그를 ‘자살할까?’라는 상태로까지 몰고 갔기 때문이다.

“경찰공무원을 시작한 지 10여 년이 지났을 무렵 아주 깊은 정신적 절망을 경험했습니다. 그 당시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 상태에서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렸어요. 하루하루가 생지옥 같은 나날이었습니다. 표정은 일그러지고,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당시 저에겐 엄청난 고통의 연속이었고, 삶을 놓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박 경감은 임용 초기에 지역 경찰로 교대근무 6~7년, 수사형사 부서에서 3~4년 일했다. 야근할 때 그냥 평범한 야근이 아니고, 살인과 강도, 폭력, 변사, 자살, 정신질환자 대응 등 상처 가득한 각종 사건을 늘 마주해야 했다. 범인 검거를 위해 밤새 잠복하기도 했다. 그 긴장감과 초조함이 그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트라우마까지 생길 정도였다.
박경운 경감이 해변에서 맨발 걷기를 하다 지인들과 셀카를 찍었다. 박경운 경감 제공.“경찰 교대근무는 지역 경찰, 상황실 등 국민과 접점에서 8시간, 12시간, 24시간 교대근무로 끊임없이 돌아가는 시스템입니다. 이런 시스템은 국민 누구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각종 범죄나 사건, 사고 등 위급한 상황이 항상 발생할 수 있으므로 경찰공무원처럼 교대근무를 하는 직군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교대근무는 사람의 생체시간, 생체리듬을 파괴하는 근무 구조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교대근무는 발암물질 2등급으로 지정했을 정도로 건강에 치명적이죠.”

최근 10년간 경찰공무원 자살률은 일반 공무원보다 2배에서 2.5배 이상 높게 나타나고 있다. 경찰공무원의 돌연사율(심근경색 등)은 일반 공무원보다 1, 8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암으로 사망하는 경우는 일반 국민보다 2배 이상 높다.

“어느 순간 불면증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습니다. 입면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수면의 질도 떨어지는 것을 경험했죠.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각종 사건, 사고 처리 과정에서 오는 긴장감과 열악한 교대근무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정신이 무너졌습니다. 자살을 고민하고 있을 때 한 경찰 선배님의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을 받으면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박경운 경남(오른쪽)이 맨발 걷기 행사에서 참가자들과 카메라 앞에 섰다. 박경운 경감 제공.박 경감은 “제가 그동안 연구한 결과 자살하는 이유는 딱 세 가지로 압축된다. 힘들고, 어렵고, 억울하면 자살한다. 그래서 힘든 동료가 있으면 다가가서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 경찰 선배가 그에게 했던 것처럼. 그 경찰 선배가 힘내라며 건넨 ‘긍정의 힘(조엘 오스틴)’이란 책도 도움이 됐다.

“처음엔 너무 뻔한 말이라 생각했는데 그 책을 여러 차례 반복해 보면서 긍정적인 마음을 내면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긍정적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많이 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2023년 다시 불면증이 찾아왔는데, 그때 우연히 맨발 걷기를 만난 게 그에게는 엄청난 행운이었다.

“50대 초반 나이라 컨디션도 떨어지고, 체중은 늘었죠. 전반적으로 건강이 안 좋아지던 때 다시 수면 장애가 찾아온 것입니다. 과거를 떠올리며 수면제 등 약에 의존하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운동도 열심히 했는데 불면증은 사라지지 않았죠. 그때 맨발로 걷는 어르신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당시 1시간 정도 함께 걸었다. 따라가면서 ‘사실상 만병통치약’처럼 얘기하는 맨발 걷기 효과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날 정말로 잠을 잘 잔 것이다. 박 경감은 “야근 근무가 잡힌 날은 오후에 억지로 잠을 자는데 정말 꿀잠을 잤다”고 했다. 맨발 걷기에 관한 자료를 찾아봤다. 박동창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회장(73)이 쓴 맨발 걷기 관련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 실천했다. 그날 이후 하루도 안 거르고 맨발로 걷고 있다. 평균 하루 3시간 이상 걸었다. 맨땅이 드러난 곳이면 운동장, 공원, 가로수 아래, 바닷가, 갯벌, 계곡, 맨발 산행도 실천하고 있다.
박동창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회장이 맨발 걷기를 하고 있다. 박동창 회장 제공.맨발 걷기의 효과를 직접 체험하고 관련 책을 다수 출간한 박동창 회장은 “맨발로 걸으면 지압 효과와 접지(接地·Earthing) 효과로 면역력이 좋아진다”고 설명한다. 맨발로 맨땅을 걸으면 지표면에 놓여 있는 돌멩이나 나무뿌리, 나뭇가지 등 다양한 물질이 발바닥의 각 부위와 상호마찰하고, 땅과 그 위에 놓인 각종 물질이 발바닥의 각 반사구를 눌러준다. 발바닥 자극은 오장육부 등 모든 신체 기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고대 중국과 이집트에서부터 이어졌다.

접지는 맨발로 땅을 밟는 행위다. 시멘트 아스팔트 등은 효과가 없다. 황톳길이 가장 좋다. 우리 몸에 30~60 ㎷의 양전하가 흐르는데 맨발로 땅을 만나는 순간 0볼트가 된다. 땅의 음전하와 만나 중성화되는데 이때 우리 몸에 쌓인 활성산소가 빠져나간다. 박 회장은 “원래 활성산소는 몸의 곪거나 상처 난 곳을 치유하라고 몸 자체에서 보내는 방위군이다. 치유하고 나면 활성산소는 몸 밖으로 배출돼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몸속을 돌아다니면서 멀쩡한 세포를 공격해 악성 세포로 바뀌게 한다. 암 등 각종 질병이 활성산소의 역기능 탓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접지가 활성산소 제거에 효과적이다. 맨발 걷기 접지의 항산화 효과”라고 말했다.
박경운 경감이 밤에 집 근처인 경기 파주 운정호수공원에서 맨발 걷기를 하며 엄지척하고 있다. 파주=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박 경감은 수면 장애를 완전히 극복했다. 환절기마다 그를 괴롭혔던 고질병 비염도 사라졌다. 잇몸도 건강해졌다. 전립선 비대증 약도 끊었다. 자살 예방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홍보하고 있다.

“맨발 걷기는 경찰 자살 예방의 ‘로또’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자살 충동을 유발하는 우울증 증상에는 그림자처럼 불면증이 따라옵니다. 우울증이나 불면증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심해지면 심신을 아주 힘들게 하고, 피폐하게 만들거든요. 당연히 자살 충동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직접 경험했고, 분명하게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맨발 걷기 전문가들은 맨발 걷기를 ‘천연신경안정제’라고 설파하기도 합니다. 또한 임상 연구에서 맨발 걷기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안정화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보고도 있어요. 한 시간 맨발 걷기를 처음 시작한 날 대자연 맨땅에서 꿀잠이라는 인생 최고의 선물을 받았고, 그날 이후 하루도 안 거르고 매일 맨발 걷기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고장면 대전 국립 한밭대 교수(64·화학생명공학과·맨발걷기생명과학연구소 소장)는 “맨발 걷기가 자살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맨발 걷기는 우리 몸에 각종 호르몬이 풍성하게 나오게 하는데 멜라토닌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통상 멜라토닌이 뇌의 중과선에서 나오면서 동시에 도파민도 같이 나옵니다. 도파민은 신경을 안정시키는 핵심 호르몬이죠. 그래서 마음이 평안한 정신 상태가 되어 우울증이 사라집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도 안정화합니다. 한마디로 맨발 걷기는 멜라토닌 도파민 등의 생성을 촉진하여 긍정적인 정신을 강화하고, 코르티솔을 안정화해 우울증을 치료해 결국 자살을 방지하게 됩니다.”
고장면 대전 국립 한밭대 교수.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제공.박 경감은 경찰청 생명 지킴이 동료 강사를 하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서 자살 예방 전문 강사로 위촉받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자살 예방 기본 강의 교안을 나누면서 덧붙여 수면 회복에 큰 도움이 되는 맨발 걷기를 실천할 수 있게 자료도 공유하고 있다. 그는 “맨발 걷기를 실천한 경찰들 모두 다 효과를 봤다고 한다”고 했다.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경기 파주지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박 경감은 맨발 걷기의 실천을 강조했다.

“자존심이나 선입견, 편견으로 인해 맨발 걷기를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적지 않은 동료 경찰들을 바라볼 땐 아주 안타깝습니다. 세상에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실천하는 사람과 신철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뉩니다. 실천할 때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긴가민가했지만, 해보니 효과를 봤습니다. 맨발 걷기의 핵심 효과 중 하나가 만병의 근원이자 끊임없이 신체 내에서 만들어지는 활성산소를 중화시켜 10만 킬로가 넘는 신체 내 혈관의 혈행을 최적화시켜 건강을 회복하는 데 크게 도움을 줍니다. 실천해 보세요. 정말 좋아집니다.”
맨발 걷기 하는 사람들의 발. 박경운 경감 제공.박 경감은 ‘우린, 자판 필사하고 책 쓰기 도전합니다’란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어싱이나 필사나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라는 부제로 9꼭지를 썼다. 그는 “인세가 얼마 되지는 않겠지만, 저에게 귀속되는 수익금은 경찰 자살 예방 사업에 전액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