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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 ③9년 만에 끝난 넷플릭스 드라마 'PPL 안전지대' 뒷얘기
한국 드라마에 외국 기업 PPL 역전 조짐
김은숙 신작 "지니" "기가영" KT 유니버스의 실체

편집자주

격변의 시대, 세상은 곳곳에서 뒤바뀌고 있습니다. 대중문화에서 그 역전의 순간을 포착해 사회·문화적 변화를 짚어 봅니다.
배우 김선호, 김고은, 송중기가 각기 다른 드라마에서 같은 사탕을 먹고 있는 장면. 모두 인도네시아 커피 사탕이다. 외국 기업 제품 간접광고(PPL)다. KBS, SBS, tvN 등 영상 캡처

드라마에서 똑같은 사탕을 먹고 있는 배우들. 인도네시아 식품 업체 커피 사탕 간접광고다. KBS, SBS, tvN 등 영상 캡처

대중문화에서 역전의 순간을 포착해 사회·문화적 변화를 짚어 보는 '역전' 코너를 통해 지난 31일 ''김우빈 비행기 샤워실'에서 OTT 금기가 깨졌다'란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최근 공개된 김은숙 작가의 넷플릭스 신작 '다 이루어질지니' 속 극의 몰입을 깨는 간접광고(PPL) 등장을 통해 2016년 넷플릭스 국내 서비스 이후 9년 동안 지켜진 'PPL 안전지대'가 사라진 배경을 다뤘습니다. 제작비 폭등과 지식재산권(IP) 독점 문제 등 K콘텐츠 산업의 구조적 문제가 광고 노출 확대로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떠넘겨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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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2915440004589)
KT는 진짜 돈을 댔을까


김 작가는 '다 이루어질지니'에서 노골적으로 PPL을 활용하면서도 그 경계를 묘하게 흐리기도 했습니다. 배경은 이렇습니다. 배우 김우빈은 집에서 '다 이루어질지니' 대본을 읽을 때 인공지능(AI) 스피커 음량을 확 줄였다고 합니다. "나, 지니"라는 대사를 할 때마다 스피커가 "네~"라고 반응해서였습니다. 김우빈이 드라마에서 맡은 역은 중동 설화 '알라딘'에서 주인이 손으로 쓱쓱 램프를 문지르면 튀어나왔던 정령, 지니. 귀신이 들린걸까요? 아닙니다. 김우빈은 집에서 KT AI 서비스인 '지니'를 쓰고 있었습니다. 드라마 속 배역 이름과 실제 사용하고 있는 AI 서비스 제품명이 똑같아 벌어진 해프닝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 이루어질지니'가 공개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드라마에서 '지니' 할 때마다 우리 집 지니가 자꾸 대답한다'(@nen***, @Pomefior****) 같은 내용의 글들이 굴비 엮이듯 올라왔습니다. '다 이루어질지니'를 TV로 틀었을 때 집에 있는 AI 지니가 응답하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판타지의 현실로의 역습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김우빈의 상대역으로 수지가 드라마에서 맡은 역의 이름은 기가영. 남녀 주인공의 성과 이름을 섞으면 '기가지니'로 KT 지니TV 셋톱박스 명칭인 기가지니와 똑같습니다. 이쯤 되면 KT 간접광고(PPL) 아닐까 싶었습니다. 답부터 말하면, 아니었습니다. 넷플릭스 관계자에 물어보니, 드라마 제작에 KT로부터 한 푼의 광고비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 작가가 지니와 기가영이란 캐릭터 이름을 PPL과 상관없이 작명했다는 겁니다. 판타지(지니, 드라마 캐릭터 이름)와 현실(AI 서비스)의 명칭이 겹치니 김 작가가 이 엉뚱한 동거를 대놓고 부각해 웃음을 주려 했던 것으로 풀이됩니다. 웃음으로 포장한 광고와 반대로 PPL처럼 포장한 '순수한 작명'. 김 작가가 '다 이루어질지니'에서 보여준 창작의 역전이었습니다.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 속 기가영(수지, 왼쪽)과 그의 지니(김우빈). 넷플릭스 제공

김고은, 김선호, 송중기가 모두 입에 문 '외국 사탕' 정체


이 역전 현상을 취재하다 보니, K콘텐츠 PPL의 새로운 역전의 조짐이 보였습니다. '다 이루어질지니'에 PPL을 한 기업은 10곳이었는데 이 중 5곳이 중국 가전 회사 나르왈과 영국 패션 브랜드 지미추 등 외국 회사였습니다. K콘텐츠의 해외 영향력이 워낙 크다 보니 외국 회사들이 한국 드라마 광고를 통해 노출 효과 극대화를 노리는 겁니다.

그렇다면, 5년 전과 비교해 요즘 한국 드라마에 외국 기업 PPL 비율은 얼마나 증가했을까요? 드라마와 예능 등을 만드는 국내 유명 스튜디오 관계자에 물어보니, 5배 정도 늘었다고 합니다. 지난해 하반기 공개돼 화제를 모은 MBC 드라마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블랙 아웃'은 2022년에 촬영이 끝났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때 우후죽순 만들어진 드라마들이 방송사 등의 경영 악화로 편성 편수가 확 줄어 창고에 쌓이고 2, 3년 동안 묵혀지면서 국내 기업들이 PPL을 꺼린 것과 대조적입니다.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인도네시아 커피 사탕. tvN 영상 캡처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들은 가장 공격적으로 한국 드라마에 PPL을 하는 외국 기업으로 인도네시아 식음료 회사 코피코(KOPIKO)를 꼽았습니다. '커피 사탕' PPL이었습니다. 김고은('유미의 세포'), 김선호('갯마을 차차차'), 남지현('작은 아씨들'), 박형식('보물섬'), 송중기('빈센조'), 이보영('마인') 등 유명한 배우들이 드라마에서 이 사탕을 모두 먹었고, 그 장면은 카메라에 클로즈업됐습니다. '한류 스타들의 사탕'이란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입니다. 사실 이 외국 사탕은 요즘은 손쉽게 편의점 등에서 구할 수 있지만 '빈센조'가 방송되던 2021년까지만 해도 시중에선 볼 수 없었습니다. 이 회사가 국내에 진출하지 않아 아직 해당 제품이 팔리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팔지도 않는 제품을 왜 한국 드라마에 PPL을 했을까요. K콘텐츠를 한국이 아닌 해외 소비자를 겨냥한 '역수출형 광고 플랫폼'으로 본 겁니다.

드라마 '여신강림'에서 배우들이 편의점 밖에서 중국산 훠궈를 먹고 있다. tvN 영상 캡처

역수출? 현실과 동떨어진 '중국산 리스크'


업계에선 이렇게 K콘텐츠를 통한 외국 기업의 PPL을 "또 다른 문화 수출"이라 여기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그러다 매서운 역풍을 맞기도 합니다. 드라마 '여신강림'(2021) 한 장면. 여고생인 임주경(문가영)과 강수진(박유나)은 편의점 밖 테이블에 앉아 중국산 훠궈 즉석 컵라면을 먹습니다. 중국 기업(쯔하이궈) PPL이었습니다. CU, GS25, 이마트24 측에 확인해 보니, 드라마 방송 당시 이 제품 역시 국내에 판매되고 있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현실과 동떨어진 PPL 설정이었습니다. 드라마처럼 한국 편의점에서 한국 고등학생이 중국 훠궈를 즉석 컵라면으로 먹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아니나 다를까, 방송 후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중국에 반감을 갖는 '반중 정서'도 작용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