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데일리 이상일기자]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하 국정자원) 화재 발생 한 달이 지났지만, 정부 전산망의 주요 서비스 상당수가 여전히 정상 복구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24, 온나라 등 핵심 행정시스템이 장기 중단된 이번 사태는, 전 세계적으로도 한 달 이상 국가급 공공 전산망이 마비된 첫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지난 9월26일 오후 8시15분께 대전 유성구 화암동에 위치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본관(지상 6층, 지하 1층, 연면적 4만15㎡)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경상 1명이 발생했고, UPS 배터리 384개가 전소됐다. 행정정보시스템 709개가 장애를 입었으며, 10월26일 오후 9시 기준 정부 전산시스템 복구율은 72.1%로 514개 시스템이 정상화 됐다.
정부는 화재 다음 날인 9월27일 오전 8시10분 ‘심각’ 단계 위기경보를 발령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가동했다. 중대본은 9월27일부터 10월20일까지 총 13회 회의를 열었으며, 이재명 대통령이 9월28일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국무총리는 화재 직후 현장을 방문했고, 대통령은 10월10일 복구 현장을 점검했다.
중대본부장도 대전센터(10월8일)와 공주센터(10월24일)를 차례로 방문해 복구 상황을 확인했다. 중대본 1차장은 10월1일부터 24일까지 14차례 현장상황실을 운영하며 실시간 점검을 진행했다. 중앙부처와 지자체도 소관 시스템 점검과 복구, 안정성 강화 조치를 병행하고 있다.
이번 화재는 단순한 시설 사고를 넘어 국가 행정 전산망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대부분의 국가가 수일 내 복구하는 일반적 사례와 달리, 한국의 행정 인프라가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일례로 2021년 3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OVH클라우드 데이터센터 화재는 유럽 공공·민간 웹서비스 360만곳을 중단시켰지만, 약 3주 만에 복구됐다. 스트라스부르 데이터센터 내 SBG2 건물 센터가 전소됐음에도 OVH는 4주 차에 클라우드 서비스의 80%를 복구하며 운영을 재개했다.
화재로 인한 전산 마비와 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난맥상은 국정조사 및 경찰 수사 등을 통해 보다 구체화될 예정이다. 이와 별개로 정부는 1조원 규모의 재해복구(DR) 체계 구축과 디지털 인프라 재편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화재 직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행정 전산망의 이중화 부재가 국가 운영 리스크로 이어졌다”며 근본적 개편을 지시했다. 행정안전부는 이에 따라 최소 1조원 이상이 필요한 이중화 구축 예산을 공식 보고했다.
그간 국정자원 예산은 운영비 중심으로 구성돼 재난 대비 예산 비중이 1% 미만에 머물렀다. 2025년 예산안에서도 DR 사업 예산은 30억원 수준으로, 실질적 복구 체계를 마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정부는 단기 복구를 위해 예비비 1521억원을 긴급 투입했다. 이 중 서버·스토리지 교체 및 임차비로 1303억원, 전기시설 보강에 158억원, 복구 인력 인건비로 63억원이 배정됐다.
다만 이는 긴급 대응용 예산으로, 장기적 이중화 구축과는 별개다. 행정안전부와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실은 ‘AI 정부 인프라 거버넌스 혁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민간 클라우드 활용, 국가데이터센터 구조 재설계, 공주·대전센터의 실시간 병행 운영 방안을 검토 중이다.
새로운 DR 체계는 두 지역 센터가 동시에 데이터를 실시간 주고받는 액티브-액티브 구조로 설계된다. 장애 발생 시 서비스 중단 없이 업무를 이어갈 수 있는 체계다. 이는 기존의 스탠바이(Standby) 방식보다 안정성과 복원력이 크게 향상된 모델이다.
이번 1조원 규모 예산은 단순 복구가 아닌 국가 디지털 인프라 구조 개편 사업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공공 부문 시스템을 모놀리식 구조에서 마이크로서비스 아키텍처로 전환해 자동 복구와 분산 처리를 강화할 계획이다.
또한 보안이 확보된 범위 내에서 민간 클라우드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도록 청와대 AI미래기획비서관실이 주도해 관련 정책을 조정하고 있다. 국가AI전략위원회는 DR 체계와 디지털정부 인프라를 통합 관리하는 거버넌스 체계를 검토 중이다.
1조~1조2000억원으로 예상되는 예산은 공주-대전센터 실시간 이중화 구축, 클라우드 네이티브 전환, 민간 협력망 연계 등으로 구성된다. 이는 단순히 서버를 추가하는 수준이 아니라 국가 행정망 전반의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사업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화재는 디지털 행정의 구조적 리스크를 확인한 계기”라며 “AI 기반의 복원력 있는 정부 인프라로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번 계획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경우, 한국의 행정 전산망은 실시간 동기화와 자동 복구가 가능한 차세대 공공 클라우드 인프라로 진화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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