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시점에서 인공지능(AI) 규제가 필요한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이 질문에 대해 미국에서 연일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AI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미 실리콘밸리 AI 기업 앤스로픽과 “AI 규제는 시기상조”라는 미 백악관 사이에 거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논쟁은 지난 14일(현지 시각) 오픈AI 출신이자 앤스로픽 공동 창업자인 잭 클라크 정책 총괄이 자신의 X(옛 트위터)에 ‘기술적 낙관주의와 적절한 두려움’이라는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클라크 총괄은 이 글을 통해 “너무나 많은 사람이 AI가 인류를 위협할 수 없다고 기만적인 주장을 편다”며 “AI를 길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어떤 이들은 AI가 단지 기계일 뿐이며,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며 “하지만 실수하지 마라.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은 단순하고 예측 가능한 기계가 아니라 실재하고 신비로운 생명체”라고 했다. 결국 “블랙홀이 주변의 모든 것을 끌어당기고 휘어지게 하듯, 인공지능이 세상을 휘어지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
앤스로픽은 AI의 안전성과 윤리성을 강조하는 기업이다. 미 캘리포니아주가 지난 13일 미국 최초로 AI 챗봇과 아동·청소년 등을 포함한 이용자 안전 장치를 마련한 규제안을 제정했을 때 테크 기업 중 유일하게 찬성했다. 앤스로픽은 “연방 정부 차원의 통일된 규제안이 필요하지만, 주정부 규제도 없는 것보단 낫다”는 입장을 밝혔다. 클라크 총괄의 글도 이러한 맥락에서 AI 규제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 글에 미 백악관이 발끈했다. 미 백악관 AI·가상화폐 정책 책임자이자 일론 머스크의 절친인 데이비드 삭스가 이를 정면 반박한 것이다. 삭스는 자신의 X에 “앤스로픽이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앤스로픽이 좌파적 규제 노선을 옹호하며 자신들을 트럼프 행정부의 피해자로 포장하고 있다”며 “우리가 한 일은 정책적 의견 차이를 밝힌 것뿐인데, 언론에서는 마치 정치적 탄압을 받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AI 정책은 중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미국이 뒤처지지 않기 위해 속도감 있게 혁신해야 한다”며 “공포에 기반한 접근은 스타트업 생태계를 위축시키고 있다”고 했다.
AI 규제를 놓고 앤스로픽과 백악관의 논쟁이 깊어지자 미 실리콘밸리 대표 투자자인 리드 호프먼까지 참전했다. 리드 호프먼은 데이비드 삭스와 함께 페이팔에 몸담았던 ‘페이팔 마피아’ 출신이다. 링크드인을 창업했고, 오픈AI 초기 투자자다. 그는 자신의 X에 “앤스로픽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오픈AI 등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AI를 올바른 방식으로, 신중하게, 안전하게, 그리고 사회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주도록 배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앤스로픽은 좋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삭스는 호프먼의 발언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반대편에서 추악한 술책에 자금을 대는 주요 인물(호프먼)이 앤스로픽은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며 비꼬았다. 논쟁이 가열되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까지 뛰어들었다. 그는 “정말 그렇다”라며 삭스 발언에 동의했다.
현재 전 세계는 AI 규제를 시작하는 단계다. 미 연방 정부 차원에서 AI 규제가 없지만, 미 캘리포니아주는 최근 AI 기업들이 안전 사고를 보고하고, 투명성을 충족하기 위한 각종 의무를 부과하는 법안을 채택했다. 한국도 최근 AI 기본법 시행령을 발표하며 구체적인 AI 규제 내용을 공개했다.
테크 업계에선 앞으로 AI 규제를 놓고 기업 간, 기업과 정부 간 입장 차이가 나타날 것으로 본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오픈AI 등 주요 AI 기업들은 규제보다는 개발 속도에 치중하고, 세일즈포스 CEO 등이 백악관에 잘 보이려고 애쓰는 상황에서 앤스로픽만 유일하게 ‘할 말을 하는 투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며 “AI 규제에 대한 논쟁은 시간이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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