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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기술육성사업 2025 애뉴얼 포럼 개최
12년간 880개 과제 선정
“아름다운 실패를 환영”

7일(금)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 호텔에서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애뉴얼 포럼이 열리고 있다. /삼성전자
“뭔가가 잘못됐다.”

2022년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보내온 우주의 모습을 본 전명원 경희대 교수는 의문점이 생겼다. 현대 천문학의 대표적 이론인 표준 우주론에 따르면 나올 수 없는 은하와 별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표준 우주론은 우주가 약 138억년 전 대폭발에서 시작돼 현재까지 팽창하고 있다는 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생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은하는 성숙도가 떨어져 그다지 밝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제임스웹이 보내온 사진에 나온 은하는 예상보다 훨씬 밝고 훨씬 무거워 보였다.

전 교수는 고민에 빠졌다. 기존 학계를 지배해온 대표 이론을 의심할 것인가, 그냥 무시할 것인가. 쉽지 않은 연구이고, 성공할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때 전 교수에게 용기를 준 것이 있다. 바로 삼성이 2013년부터 시작한 미래기술육성사업이다.

삼성의 대표적 사회공헌 활동인 미래기술육성사업은 기존 연구 지원 사업과 달랐다. 독창적이고 도전적이고 파격적인 연구지만 인류 사회에 기여할 주제를 뽑아 장기 지원한다. 전 교수는 “미래기술육성사업에서 2024년부터 지원을 받아 연구하고 있다”며 “GPU(그래픽처리장치) 1000개를 연결해 초기 우주 모습을 재현했다”고 했다. 전 교수는 이를 통해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발견한 초기 은하들이 표준 우주론에 따른 계산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초기 우주 데이터를 제시하는 결과를 냈다.

삼성이 7일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 호텔에서 ‘미래기술육성 사업 2025 애뉴얼 포럼’을 개최했다. 삼성은 매년 미래기술육성 연간 포럼을 운영하는데, 언론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행사엔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 박승희 삼성전자 CR담당 사장, 장석훈 삼성사회공헌총괄 사장 등을 비롯해 국내 연구진 및 학계 전문가 400여명이 참석했다.

7일(금)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 호텔에서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애뉴얼 포럼이 열리고 있다. /삼성전자

삼성은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하지만 미래기술육성 사업은 특별하다. 이 사업은 삼성보다는 국가의 미래와 발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매년 독창적이고 도전적인 과제를 선정해 약 1000억원 규모로 연구비를 장기 지원한다. 목표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연구를 지원’하고 ‘아름다운 실패를 환영’하는 것이다. 단기 성과나 결과보다는 사회 발전을 위한 방향성과 가능성을 보고 연구를 지원한다.

2013년 1조50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해 시작했고, 지금까지 880개 과제를 선정해 1조1419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했다. 이를 통해 교수 1200명을 포함한 전문 연구 인력 1만6000여명이 미래 기술 연구에 전념했다.

단순히 연구비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 단계별 전문가 멘토링, 산업계와의 기술 교류, 기술 창업까지 지원한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65개 연구가 창업으로 이어졌다. 올 7월엔 서울대 윤태영 교수가 삼성 미래기술육성 사업을 통해 창업한 업체 ‘프로티나’가 코스닥에 상장하기도 했다. 이 업체는 5년간 삼성의 지원을 받아 신약 후보 물질을 빠르게 찾아내는 고속 항체 스크리닝 플랫폼 기술을 개발했다.

7일(금)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 호텔에서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애뉴얼 포럼이 열리고 있다. /삼성전자

이날 애뉴얼 포럼 무대에 등장한 연구자들은 모두 자신의 연구 과제를 “미래기술육성 사업이 없었다면 결코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대학에서 교수직을 유지하거나 빠른 승진을 위해서는 논문 숫자가 중요하기 때문에 쉽고 간단한 연구 중심으로 실적을 쌓아갔을 것이란 이야기다. 실제로 우리나라 연구·개발 분야의 가장 큰 문제는 연구자들이 큰 의미가 있지만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도전적 과제에 뛰어들지 않는 것이다. 학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R&D 성공률은 90% 안팎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17.8%), 일본(10~30%), 유럽(20% 안팎)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다. 그만큼 연구자들이 쉽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고 의미가 적은 연구에 치중하고 있다.

7일(금)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 호텔에서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애뉴얼 포럼이 열리고 있다. /삼성전자
삼성 미래기술육성은 이를 바꾸자는 하나의 움직임이다. 수학자인 카이스트 김재경 교수는 ‘수학으로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해외에서 수리생물학을 전공하고 귀국했다. 세계 최초이자 유일, 최고의 연구를 하고 싶었지만 여건이 되지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시계열 데이터 분석을 위한 새로운 수학적 방법론’이란 주제로 삼성 미래기술육성 사업에 선정됐다. 김 교수는 “삼성의 지원이 없었다면 결코 상상조차 못 했을 연구”라고 했다.

그는 3년간 내리 실패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추궁이나 지원 중단은 없었다. 그 결과 김 교수는 ‘뎅기열 확산에 미치는 인과관계’를 세계 최초로 규명했고, 수면과 기분 장애 사이의 인과관계 규명, 개인 맞춤형 수면 패턴 알고리즘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는 인체의 24시간 리듬인 ‘생체시계’를 수학적 모델링으로 분석해 다양한 수면 질환의 원인을 찾는 것이다. 이 기술은 삼성전자 스마트워치 ‘갤럭시 워치8’에 탑재돼 사용자가 몇 시에 자고 언제 일어나는 것이 가장 좋은지 추천해주는 AI 수면 관리 기능으로 구현됐다.

이날 포럼에서는 이런 성과와 함께 10대 유망 기술, 기초과학과 공학 관련 세부 주제 토론과 발표가 하루 종일 진행됐다. 국양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은 “미래기술육성사업은 국가 과학기술 성장 기반을 만들어 왔다”며 “연구자들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하고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