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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과와의 단독 인터뷰
크루소 에너지 시스템즈의 창립자 체이스 로크밀러 CEO
체이스 로크밀러 크루소 에너지 시스템즈 CEO. 사진=강해령 기자

"AI 거품은 없다고 믿습니다. (It is my belief that there is no bubble.)"

'네오 클라우드'라는 별명으로 글로벌 AI 업계의 신성으로 떠오른 크루소 에너지 시스템즈의 창립자 체이스 로크밀러 CEO는 지난 3일 한국경제신문과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어 그는 시장에서 제기되고 있는 인공지능(AI) 거품론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했다. AI가 전례없는 ‘성장 루프(growth loop)’에 진입했고, 실제 경제 성장으로도 직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로크밀러 CEO는 구체적으로 "AI 모델 고도화→유용성 증가→수요 확대→인프라 투자→모델 업그레이드로 이어지는 놀라운 성장 루프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닷컴 버블 때와는 차원 달라…GPU 한 장에 10명 줄 선다

로크밀러 CEO는 AI 거품론과 자주 비교되는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 때와는 차원이 다른 분위기라고도 설명했다. 그는 "당시 인터넷 투자 붐은 '누군가 지으면 언젠가 쓸 것'이라는 투기적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현재 AI 업계는 가용할 수 있는 GPU마다 10명의 수요자가 줄을 서는 실수요 시장"이라고 주장했다.

또 "현재 AI를 뒷받침할 인프라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1~2년 내 우리가 아무리 빠르게 데이터센터를 짓더라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크루소는 AI 데이터센터 기업이다. 이들의 이력은 독특하다. 로크밀러 CEO가 컬리 캐브니스 COO와 공동 창립한 크루소는 2018년 설립 당시만 해도 '비트코인 기업'으로 불렸다.

이들은 석유 시추 현장에서 하늘로 날려버리던 폐가스(flare gas)를 모아 전기를 만들었고, 이 에너지로 코인을 채굴하는 독특한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암호화폐 열기가 식고 '챗GPT'라는 거대한 생성형 AI 서비스가 등장하자, 크루소는 이 기술을 들고 곧장 AI 인프라 시장으로 방향타를 돌렸다.

크루소는 2023년 자사 클라우드를 첫 공개한 이후 2년 만에 대박이 났다. AWS·마이크로소프트 등 전통의 서버 강자들이 다양한 클라우드 솔루션을 공급하는 것과 달리, 딱 AI에만 특화돼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AI 시대의 '네오 클라우드' 업체로 급부상했다.

비트코인 채굴 때 썼던 폐가스 발전 방식을 AI 분야에도 그대로 가져온 것도 특징이다. 'AI 데이터센터=초대형 원전 1기'라는 말이 나올만큼 AI 업계에서 전력난이 최대 화두가 되고 있는 가운데, 잉여 자원을 활용한 발전 방식은 데이터센터 업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에너지 분야의 관점에서 그는 최근 AI 업계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전력에 대해 색다른 시각을 내놓았다. AI 인프라가 오히려 발전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크밀러 CEO는 "데이터센터 에너지는 피크 전력을 기준으로 설계가 되는데, 설비가 24시간 내내 최대치로 가동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남는 전력을 외부 전력망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데이터센터는 에너지 소비처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전력 공급원이 될 수도 있다"고 역설했다.

크루소가 미국 텍사스주에 건설하고 있는 '스타게이트' AI 팩토리. 사진제공=크루소

현재 이들은 오라클과 협력해 '스타게이트 원'이라는 프로젝트명 아래 미 텍사스 주에 1.2GW짜리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곳에 40만 장의 엔비디아 GPU가 탑재될 것으로 알려졌다. 로크밀러 CEO는 "내년에도 투자 규모가 매우 크고, 공격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AI 투자하고 싶다…최태원과도 오찬 미팅

체이스 로크밀러 크루소 CEO. 사진=강해령 기자

아울러 그는 한국 투자에도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로크밀러 CEO는 "한국에 데이터센터 투자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이곳에 우리의 클라우드 플랫폼을 도입해 새로운 AI 생태계를 구축하고 싶은 목표까지 있다"고 밝혔다.

로크밀러 CEO는 "한국은 챗GPT 같은 생성형 AI를 가장 빨리 받아들였고 인프라 확충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한국 AI 생태계를 치켜세웠다.

그는 3일 서울 코엑스 전시장에서 열린 'SK AI 서밋 2025' 연사로도 참여했다. 그러나 4일까지 한국에 머물면서 크루소와 뜻이 통하는 파트너 기업을 찾을 예정이다. 이미 이날 최태원 SK그룹 회장과도 점심 식사를 하면서 이 비전을 공유했다.

로크밀러 CEO는 "최 회장과는 SK가 AI 인프라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지, 그의 포부와 비전에 대한 이야기 등을 나눴다"고 말했다. 또 "전력·부품 공급, 한국 노동 시장 등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는 파트너를 찾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구체적인 투자 시기와 금액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러나 "한국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하기보다는 해외 대형 자본 파트너들과 함께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며 "물론 한국 금융 기관과 협력도 열려 있다"고 귀띔했다.

로크밀러 CEO는 증시 상장에 대해서도 짧게 언급했다. 그는 "기업공개(IPO) 논의는 진행 중이지만 구체적으로 밝힐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을 아끼면서도 “크루소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인프라 기업인 만큼, 상장은 자연스러운 수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