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경제]
지난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치맥 회동’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이 앉았던 깐부치킨 매장 테이블에는 ‘1시간 제한’이 걸렸다고 한다. 밀려드는 주문과 가맹 문의에 신규 가맹 상담까지 멈췄다는 소식에 실소가 절로 나왔다.
연합뉴스
치킨과 ‘소맥’에 거나하게 취한 젠슨 황은 “미국에서 가장 맛있는 치킨은 한국 치킨”이라고 단언하며 "실리콘밸리에 있는 '99치킨’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구구’를 한국어로 또박또박 발음하며 이해하지 못한 청중들에게 “나인티나인(ninety-nine chicken) 치킨”이라고 재확인까지 해줬다.
길 가다 보던 동네 치킨집이 글로벌 시총 1위 기업 창업자 입에서 거론된 기분이다. 재계 거물들과의 만찬 자리에서도 “여기 '99치킨' 같다”고 언급했다는 그곳. 과연 ‘AI 황제’, ‘테크계 록스타’의 입맛을 사로잡은 치킨집은 어떤 곳일까.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99치킨'을 찾았다.
◇ 구도심 노포 호프집에 온 듯… ‘올드스쿨 치킨’의 그 맛
식당은 실리콘밸리 한인 상권의 중심인 엘카미노 대로(El Camino Real)에 있다. LA 코리아타운만큼 거대한 규모는 아니지만 북가주 일대에서는 가장 큰 한인타운으로 꼽히는 곳이다. 인근에는 한국 마트와 식당은 물론 파리바게뜨나 홍콩반점 같은 친숙한 K푸드 체인들이 성업 중이다.
미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99치킨 전경. ‘99치킨’ ‘호프’ ‘푸라이드 양념’ ‘치킨’ 등 한국어 간판이 정겹다. 윤민혁 기자
99치킨의 첫인상은 '올드스쿨'이었다. '호프', '푸라이드 양념'이라고 적힌 투박한 한글 네온사인이 향수를 자극했다. 실내 역시 세련된 최신식 프랜차이즈와는 거리가 멀다. 벽면을 장식한 연예인들의 소주 광고 포스터와 매장에 흐르는 ‘흘러간’ 10년 전 K팝이 동대문 어드메 노포 호프집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저녁 식사 시간인 오후 6시 30분. 매장에 들어서자 히스패닉, 동남아계 가족들이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3시간여 머무는 동안 한국인 손님은 기자 일행을 포함해 단 두 팀 뿐이었다. 주인은 “한국인보다 외국인 손님이 더 많다”고 했다. 매장은 작았으나 주방은 바빴다. 우버이츠와 도어대시 등 배달 기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주력 메뉴는 '뼈 치킨'이다. 순살은 없다. 대신 한국 치킨집에서 보기 힘든 큼지막한 미국 닭 다리와 날개 부위만 쓴다. 맛은 후라이드를 기본으로 케첩 베이스의 순한 양념, 고추장 베이스의 '코리안 양념', 허니 갈릭, 간장 등이 구비돼 있었다. 매운 맛에 익숙치 않은 외국인 방문자들을 위해 케첩 기반 양념을 만들었다고 한다. 매운 맛도 단계별로 조절할 수 있도록 한 세심함이 인상적이다.
99치킨의 치킨 메뉴. 후라이드, 한국식 고추장 양념, 케첩 양념, 허니 갈릭 등을 시켰다. 한국보다 큰 닭을 다리와 날개 부위만 쓴다. 윤민혁 기자
후라이드, 고추장 양념 반반과 순한 양념, 허니 갈릭 반반을 시켰다. 닭이 크다보니 건장한 성인 남성 3인이 배부르게 먹고 다리 두개와 날개 두개를 남길 정도로 푸짐했다.
주문과 함께 나온 비닐장갑을 끼고 닭 다리를 입에 물어봤다. 맛은 굉장히 안정적이다. 한국의 치킨보다 월등히 큰 크기 덕에 '뜯는 맛'이 살아있다. 가게 외관처럼 올드스쿨한, 거칠지만 매력적인 시장 통닭의 그 맛이다. 젠슨 황의 트레이드마크인 가죽 재킷처럼 '터프'하다. 섬세하고 고급화된 프리미엄 치킨과는 결이 다르다. 화려하고 복잡한 맛의 요즘 치킨이 CPU라면, 99치킨은 단순함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GPU다.
치킨 무를 찾으니 매장 한편에 마련된 샐러드바에서 원하는대로 가져가면 된다고 했다. 미국에서 공장제 기성품을 구하기 힘든 치킨무는 주인이 손수 만든다. 할라피뇨, 양배추 샐러드도 준비돼 있다. 종이 접시에 마음껏 담아 먹으면 된다. 무 하나에 추가금을 내야하는 한국 유명 프랜차이즈보다 낫다.
◇ 한식 매니아 젠슨 황, 삼계탕·숯불구이집 목격담도
매장 한켠에는 2007년 지역 유력지 ‘머큐리 뉴스’에 맛집으로 소개된 기사가 빛바랜 채 걸려 있었다. 99치킨은 2006년 개업했다. 살인적인 실리콘밸리의 물가와 임대료 속에서 20년 가까이 한자리를 지켜온 터줏대감이다. 그간 주인도 두차례 바뀌었다. 현 사장 내외가 가게를 인수한 건 3년 전이다.
99치킨 내 샐러드바. 치킨 무는 주인이 손수 만든다고 했다. 윤민혁 기자
사실 인수 후 젠슨 황이 가게를 찾은 적은 없다고 한다. 사장은 “인수 후에는 젠슨 황을 매장에서 본 적은 없다"며 "워낙 바쁘신 분이니 배달로 드셨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99치킨과 엔비디아 본사는 차로 3~4분 거리다. 야근하던 젠슨 황이 ‘야식’으로 99치킨을 시켰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는 “한국에서 가게가 언급된 줄도 몰랐는데, 지난 주말 갑자기 전화 주문과 방문이 폭주해 손님들에게 전해 듣고서야 알았다”며 웃었다. 이어 "최근 한국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 진출과 불경기에 주변 한인 상권이 많이 힘들어했는데 큰 힘이 됐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젠슨 황은 소문난 '한식 매니아'다. 대만 태생이다보니 아시아 음식을 선호하는 듯하다. 99치킨 바로 옆에 위치한 삼계탕집에서 젠슨 황을 목격했다는 얘기도 들어봤다. 한달쯤 전에는 최태원 SK 회장도 찾았다던 실리콘밸리의 고급 한식 고깃집에서 저녁을 먹기도 했다. 당시에도 시민들에게 서슴없이 ‘셀카’를 찍어주고 사인도 남겨 한인 사회에서 소소한 화제가 됐다.
4일(현지 시간) 저녁 99치킨 실내 전경. 외국인 가족들과 대기 중인 우버이츠·도어대시 배달주문 기사들이 보인다. 윤민혁 기자
젠슨 황의 개인적 선호와 별개로 실리콘밸리와 미국 전역에서 K푸드 위상이 높기도 하다. 유행을 넘어 트렌디하고 고급스러운 음식으로 평가되는 것 같다. 최근 오픈AI 개발자 행사에서는 잡채를 비롯한 한식이 주 메뉴로 오르기도 했다. 아시아인을 찾기 힘든 한적한 시골 마을 식당에서도 ‘갈비 타코’, ‘김치 플레이버 샐러드’ 같은 메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불닭볶음면은 없는 상점을 찾기가 더 힘들다.
젠슨 황 '최애' 99치킨, 가죽재킷처럼 터프한 '옛날 통닭'의 매력 [윤민혁의 실리콘밸리View]
지난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치맥 회동’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이 앉았던 깐부치킨 매장 테이블에는 ‘1시간 제한’이 걸렸다고 한다. 밀려드는 주문과 가맹 문의에 신규 가맹 상담까지 멈췄다는 소식에 실소가 절로 나왔다.
치킨과 ‘소맥’에 거나하게 취한 젠슨 황은 “미국에서 가장 맛있는 치킨은 한국 치킨”이라고 단언하며 "실리콘밸리에 있는 '99치킨’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구구’를 한국어로 또박또박 발음하며 이해하지 못한 청중들에게 “나인티나인(ninety-nine chicken) 치킨”이라고 재확인까지 해줬다.
길 가다 보던 동네 치킨집이 글로벌 시총 1위 기업 창업자 입에서 거론된 기분이다. 재계 거물들과의 만찬 자리에서도 “여기 '99치킨' 같다”고 언급했다는 그곳. 과연 ‘AI 황제’, ‘테크계 록스타’의 입맛을 사로잡은 치킨집은 어떤 곳일까.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99치킨'을 찾았다.
◇ 구도심 노포 호프집에 온 듯… ‘올드스쿨 치킨’의 그 맛
식당은 실리콘밸리 한인 상권의 중심인 엘카미노 대로(El Camino Real)에 있다. LA 코리아타운만큼 거대한 규모는 아니지만 북가주 일대에서는 가장 큰 한인타운으로 꼽히는 곳이다. 인근에는 한국 마트와 식당은 물론 파리바게뜨나 홍콩반점 같은 친숙한 K푸드 체인들이 성업 중이다.
99치킨의 첫인상은 '올드스쿨'이었다. '호프', '푸라이드 양념'이라고 적힌 투박한 한글 네온사인이 향수를 자극했다. 실내 역시 세련된 최신식 프랜차이즈와는 거리가 멀다. 벽면을 장식한 연예인들의 소주 광고 포스터와 매장에 흐르는 ‘흘러간’ 10년 전 K팝이 동대문 어드메 노포 호프집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저녁 식사 시간인 오후 6시 30분. 매장에 들어서자 히스패닉, 동남아계 가족들이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3시간여 머무는 동안 한국인 손님은 기자 일행을 포함해 단 두 팀 뿐이었다. 주인은 “한국인보다 외국인 손님이 더 많다”고 했다. 매장은 작았으나 주방은 바빴다. 우버이츠와 도어대시 등 배달 기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주력 메뉴는 '뼈 치킨'이다. 순살은 없다. 대신 한국 치킨집에서 보기 힘든 큼지막한 미국 닭 다리와 날개 부위만 쓴다. 맛은 후라이드를 기본으로 케첩 베이스의 순한 양념, 고추장 베이스의 '코리안 양념', 허니 갈릭, 간장 등이 구비돼 있었다. 매운 맛에 익숙치 않은 외국인 방문자들을 위해 케첩 기반 양념을 만들었다고 한다. 매운 맛도 단계별로 조절할 수 있도록 한 세심함이 인상적이다.
후라이드, 고추장 양념 반반과 순한 양념, 허니 갈릭 반반을 시켰다. 닭이 크다보니 건장한 성인 남성 3인이 배부르게 먹고 다리 두개와 날개 두개를 남길 정도로 푸짐했다.
주문과 함께 나온 비닐장갑을 끼고 닭 다리를 입에 물어봤다. 맛은 굉장히 안정적이다. 한국의 치킨보다 월등히 큰 크기 덕에 '뜯는 맛'이 살아있다. 가게 외관처럼 올드스쿨한, 거칠지만 매력적인 시장 통닭의 그 맛이다. 젠슨 황의 트레이드마크인 가죽 재킷처럼 '터프'하다. 섬세하고 고급화된 프리미엄 치킨과는 결이 다르다. 화려하고 복잡한 맛의 요즘 치킨이 CPU라면, 99치킨은 단순함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GPU다.
치킨 무를 찾으니 매장 한편에 마련된 샐러드바에서 원하는대로 가져가면 된다고 했다. 미국에서 공장제 기성품을 구하기 힘든 치킨무는 주인이 손수 만든다. 할라피뇨, 양배추 샐러드도 준비돼 있다. 종이 접시에 마음껏 담아 먹으면 된다. 무 하나에 추가금을 내야하는 한국 유명 프랜차이즈보다 낫다.
◇ 한식 매니아 젠슨 황, 삼계탕·숯불구이집 목격담도
매장 한켠에는 2007년 지역 유력지 ‘머큐리 뉴스’에 맛집으로 소개된 기사가 빛바랜 채 걸려 있었다. 99치킨은 2006년 개업했다. 살인적인 실리콘밸리의 물가와 임대료 속에서 20년 가까이 한자리를 지켜온 터줏대감이다. 그간 주인도 두차례 바뀌었다. 현 사장 내외가 가게를 인수한 건 3년 전이다.
사실 인수 후 젠슨 황이 가게를 찾은 적은 없다고 한다. 사장은 “인수 후에는 젠슨 황을 매장에서 본 적은 없다"며 "워낙 바쁘신 분이니 배달로 드셨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99치킨과 엔비디아 본사는 차로 3~4분 거리다. 야근하던 젠슨 황이 ‘야식’으로 99치킨을 시켰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는 “한국에서 가게가 언급된 줄도 몰랐는데, 지난 주말 갑자기 전화 주문과 방문이 폭주해 손님들에게 전해 듣고서야 알았다”며 웃었다. 이어 "최근 한국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 진출과 불경기에 주변 한인 상권이 많이 힘들어했는데 큰 힘이 됐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젠슨 황은 소문난 '한식 매니아'다. 대만 태생이다보니 아시아 음식을 선호하는 듯하다. 99치킨 바로 옆에 위치한 삼계탕집에서 젠슨 황을 목격했다는 얘기도 들어봤다. 한달쯤 전에는 최태원 SK 회장도 찾았다던 실리콘밸리의 고급 한식 고깃집에서 저녁을 먹기도 했다. 당시에도 시민들에게 서슴없이 ‘셀카’를 찍어주고 사인도 남겨 한인 사회에서 소소한 화제가 됐다.
젠슨 황의 개인적 선호와 별개로 실리콘밸리와 미국 전역에서 K푸드 위상이 높기도 하다. 유행을 넘어 트렌디하고 고급스러운 음식으로 평가되는 것 같다. 최근 오픈AI 개발자 행사에서는 잡채를 비롯한 한식이 주 메뉴로 오르기도 했다. 아시아인을 찾기 힘든 한적한 시골 마을 식당에서도 ‘갈비 타코’, ‘김치 플레이버 샐러드’ 같은 메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불닭볶음면은 없는 상점을 찾기가 더 힘들다.
젠슨 황 '최애' 99치킨, 가죽재킷처럼 터프한 '옛날 통닭'의 매력 [윤민혁의 실리콘밸리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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