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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 [SK바이오팜 제공]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학회, 환자 단체 등을 통해 요구가 높았다”

25만명으로 추산되는 국내 뇌전증 환자들에게 희소식이 전해졌다. 한국 기업이 개발한 뇌전증 혁신신약이 마침내 품목허가를 획득, 상업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사전 상담부터 신약 허가까지 걸린 시간은 단 292일. 통상 400일 이상 걸렸다는 걸 감안하면 크게 단축된 결과다. 이례적인 속도를 낸 배경에는 신속한 국내 도입이 필요하다는 환자들의 요청과 정부와 제약사의 의지가 있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3일 성인 뇌전증 환자 치료제인 ‘엑스코프리정(성분명 세노바메이트)’을 국내에서 개발된 41번째 신약으로 허가했다고 밝혔다.

성인 뇌전증 환자에서 기존 항뇌전증약으로 적절하게 조절이 되지 않으며 2차성 전신발작을 동반하거나 동반하지 않는 부분발작 치료의 부가요법으로 적응증을 승인받았다.

식약처는 “기존 항뇌전증약 투여로 적절하게 조절되지 않는 뇌전증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 미국 광고. [엑스코프리 유튜브 채널 갈무리]


뇌전증은 뇌신경세포가 과도하게 흥분되거나 억제되면 신체의 일부나 전체가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경련성 발작을 보이거나 의식을 잃게 되는 질환이다. 뇌전증 환자의 약 30%는 기존 약물로 증상이 조절되지 않는 약물난치성 뇌전증 환자로 집계된다.

엑스코프리는 SK바이오팜이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개발, 허가까지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해 201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뇌전증 혁신 신약이다. 뇌에 흥분성 신호를 전달하는 나트륨 채널을 차단해 신경세포의 흥분성 및 억제성 신호의 균형을 정상화한다.

국내 판매를 맡은 동아에스티에 따르면 다국가 임상으로 진행한 Pivotal(품목허가를 위한 임상) 임상 결과 엑스코프리정을 투여받은 환자들은 발작 빈도 감소율 55%, 완전발작소실율 21%를 보이며 유의미한 효과를 입증했다.

미국에서 2020년 5월부터 판매를 시작한 엑스코프리는 지난 2분기에 분기별 매출 1억달러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의료계와 환자 단체는 그동안 이 혁신신약의 신속한 국내 도입을 촉구해 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뇌전증 환자는 2018년 14만5000명에서 2022년 15만2000명으로 증가했다. 뇌전증은 사회적 편견으로 질환을 숨기거나 치료를 미루는 경우가 많아 실제 환자 수는 약 25만명으로 추정된다.

SK바이오팜은 직판망을 보유한 미국을 제외한 여타 국가와는 파트너링 전략을 취하고 있다. SK바이오팜은 엑스코프리 판권을 로열티 없는 조건으로 동아에스티에 이전했다.

동아에스티는 국내외 30개국 공급을 위한 완제의약품(DP) 생산 기술을 이전받아 엑스코프리정 30개국 허가, 판매 및 완제의약품 생산을 담당한다.

동아에스티는 국내 판권을 획득한 직후인 지난 2월20일 식약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세노바메이트’의 국내 판권을 보유한 동아에스티 사옥. [동아에스티 제공]


정부는 엑스코프리가 그동안 국내에 도입되지 않아 해외에서 처방받는 환자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조속한 도입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높았던 품목인 만큼, 신속한 절차에 착수했다.

정부는 신약 허가 기간을 기존 420일에서 295일로 단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 ‘신약 품목허가·심사 업무절차’ 지침을 제정해 올해 1월부터 도입했다.

이 지침은 1월1일 이후 접수되는 신약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2월 품목허가 신청된 엑스코프리가 적용됐다. 식약처는 신약 허가 전문인력을 포함한 품목전담팀을 구성(21명)했으며 임상시험(GCP)과 제조·품질관리(GMP) 우선 심사, 품목허가 신청 전후 맞춤형 대면회의(8회)를 제공했다.

또한 개발단계 사전상담과 ‘글로벌 혁신제품 신속심사 지원체계(GIFT)’로 지정한 후, 심사 역량을 최대한 집중한 신속 심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정부가 목표로 했던 295일보다 사흘 앞당긴 292일 만에 품목허가를 완료했다.

이로써 엑스코프리는 국산 41호 신약이자, 신약 품목허가·심사 업무절차’ 지침을 적용해 허가된 첫 번째 품목으로 기록됐다.

동아에스티는 건강보험 급여 등재 절차 등 상업화를 위한 후속절차에 착수한다. 제약사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신약의 급여 등재를 신청하고 실제 급여가 등재되기까지 통상 200일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이르면 내년 출시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동아에스티 관계자는 “엑스코프리정은 식약처의 새로운 신약 품목허가 및 심사 업무절차에 따라 진행됐으며 여러 회의와 혁신제품 사전상담 등 식약처와의 긴밀한 협업이 원활한 허가에 큰 도움이 됐다”며 “엑스코프리정의 보험 약가 신청 및 등재를 신속히 추진해 국내 뇌전증 환자들이 빠르게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세계 최대 바이오 전시회 ‘바이오 USA 2025’에 마련된 SK바이오팜 부스. 전면에 미국 전역에서 전개 중인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 광고영상을 배치했다. 보스턴=최은지 기자


SK바이오팜은 미국 직판과 기술 수출을 통해 유럽을 포함한 글로벌 주요 시장 25개국에서 세노바메이트를 성공적으로 상업화했다.

국내 품목허가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아시아 시장으로 진출할 예정이다. 세노바메이트의 중화권 판권을 보유한 이그니스 테라퓨틱스는 지난해 12월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에 품목허가를 신청해, 올해 말 또는 내년 허가를 기대하고 있다.

일본 파트너사인 오노약품공업은 지난 9월 일본 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PMDA)에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글로벌 뇌전증 치료제 시장에서 세노바메이트의 입지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현재 뇌전증 치료제 매출 1위인 UCB의 ‘브리비액트’가 2026년 2월 특허 만료를 앞두고 있어, 역성장이 예상된다.

세노바메이트는 2030년 이후까지 특허가 유지되기 때문에 SK바이오팜이 시장 주도권을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적응증 확장을 위해 진행한 청소년 및 성인 대상 전신 발작(PGTC Seizure)에 대한 임상 3상에서 긍정적인 탑라인 결과를 확보했다.

SK바이오팜은 2029년 ‘블록버스터 신약’의 기준인 매출 1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