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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일본 야마가타현 한 초등학교에 나타난 야생곰.[X(구 트위터) 갈무리]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학교 가다가 마주칠 수 있는 상황”

갑자기 한 초등학교에 나타나 유리창을 깨부수는 야생곰. 흔히 보이는 AI(인공지능) 영상의 한 장면이 아니다.

이는 최근 이웃 나라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상황. 야생곰 출몰이 급격히 늘어나며 주민들의 생활권 안에서도 그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피해도 적지 않다. 올해 곰 출몰로 인한 부상자는 100여명을 넘어섰다. 사망자만 12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운 지 오래다.

반달가슴곰.[게티이미지뱅크]


갑작스러운 곰 출몰의 원인으로 지적된 건 ‘기후변화’. 역대급 더위와 태풍, 가뭄 등 변화무쌍한 날씨로 곰의 먹이인 도토리가 자라지 않자, 먹을 것을 찾아 내려온 것.

심지어 지금과 같은 가을철은 곰이 동면하기 전 가장 많은 식량을 필요로 하는 시기다. 향후 약 한 달간 곰 출몰이 더 잦아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7일 일본 군마현 누마타의 한 수퍼마켓에 곰 한 마리가 들어가 활보하고 있다.[AFP]


일본 환경성에 따르면 이날 기준, 올해 야생곰 습격으로 인한 사망자는 12명으로 집계돼,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종전의 기록은 2023년 6명. 올해 유독 야생곰 피해가 늘어나며 처음으로 10명을 넘어섰다. 사망자만 그렇다. 야생곰 습격을 받은 사람만 해도 수백명에 달한다.

현재 일본이 곰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다. 기존에는 북쪽에 위치한 훗카이도 지역의 불곰으로 인한 피해가 종종 발생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가 위치한 혼슈 지역에 서식하는 반달가슴곰으로 인한 습격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29일 일본 야마가타현 한 초등학교에 나타난 야생곰.[X(구 트위터) 갈무리]


또한 야생곰 습격 피해가 발생하는 지역도 넓어지고 있다. 기존에는 등산 등을 목적으로 곰이 서식하는 산속에 들어갔다가 습격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역 주변, 초등학교, 슈퍼마켓 등 주민 생활반경 내로 들어와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

실제 지난 16일 이와테현에서는 온천에서 청소하던 60대 남성이 행방불명됐다가, 인근 산속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바 있다. 아키타현에서는 이른 오전 반달가슴곰이 역 주변 중심가에 출몰해 사람 네 명을 습격한 사건이 보고됐다.

불곰.[게티이미지뱅크]


현지 언론 집계에 따르면 올해 4월부터 10월까지 곰으로 인한 사상자 중 주민 생활권에서 습격당한 비중은 약 66%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또한 7월 이후 하반기만 놓고 보면 생활권 습격 비중이 8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에서 갑자기 야생곰 습격이 늘어난 원인으로는 ‘먹이 부족’이 지적되고 있다. 산속에서 기존에 섭취하는 먹이를 찾지 못한 곰들이, 비교적 쉽게 음식물쓰레기 등을 발견할 수 있는 민가까지 내려오고 있다는 것.

불곰.[헤럴드DB]


특히 기후변화로 인해 곰의 먹이가 되는 ‘도토리’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 게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올여름 일본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역대급 더위’와 함께 지역에 따라 태풍, 가뭄이 반복되는 변화무쌍한 날씨를 겪었다.

도토리는 7~9월 여름에 급성장한다. 이 시기에 날씨 변동이 커질 경우 성장 불량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일본 산림국 또한 최근 야생곰 출몰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군마현 등 일부 지역에서 올해 도토리 작황이 ‘흉작’으로 3년 새 가장 수확 환경이 악화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7일 일본 군마현 누마타의 한 수퍼마켓에 곰 한 마리가 들어가 활보하고 있다.[AFP]


고령화도 하나의 원인으로 지적됐다. 농촌 지역의 경우 곰을 쫓아낼 수 있는 사람 수 자체가 줄어든 상황인 데다, 경작을 포기해 방치된 과수에 야생곰이 몰리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이 줄어들며, 향후 야생곰이 생활권을 점령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지금과 같은 가을철은 곰이 동면하기 전 가장 많은 양의 먹이를 필요로 하는 시기다.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기 전까지, 산속에서 먹이를 찾지 못한 야생곰들이 주민 생활권까지 내려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 적어도 11월까지는 야생곰 습격에 대한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반달가슴곰.[국립공원연구원 제공]


이에 일본 정부 또한 ▷곰의 서식지 출입 자제 ▷곰의 유인물이 되는 과수, 애완동물 먹이 등 관리 등 주민 지침을 발표했다. 주민 생활권에 곰이 출몰했을 경우, 총기 사용을 가능하게끔 하는 긴급 총렵 제도를 확대하는 계획도 검토하고 있다.

아사오 게이이치로 일본 환경상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생활권에 곰이 침입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지자체에 기술적, 재정적 지원을 통해 긴급 총렵 제도의 운용을 넓히는 등 곰의 생활권 침입에 대한 피해 방지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