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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헌 SK텔레콤 최고경영자(CEO)와 SKT 타워 /사진=SKT
SK텔레콤(SKT)이 유심 해킹 사태라는 초유의 위기 속에서 신임 최고경영자(CEO)로 법조인 출신 정재헌 사장을 택했다. SKT 역사상 첫 법조 출신 CEO다. 기술 인사보다 리스크 관리와 규제 대응, 고객 신뢰 회복에 무게를 둔 인사로 해석된다. 정 사장은 AI 컴퍼니 전환과 해킹 사태 수습, 고객과 시장의 신뢰 회복, 법적 분쟁 대응 등 중층의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

30일 SK그룹은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 정재헌 대외협력 사장을 SK텔레콤의 신임 CEO로 선임했다. 정 사장은 향후 주주총회 및 이사회를 거쳐 대표이사로 선임될 예정이다.

정 사장은 1968년생으로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1997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장 등을 지내며 법조계에서 약 20년을 보냈다. 2020년 SKT에 합류해 법무그룹장을 맡으며 신사업 법무를 총괄했다.

2022년 SK스퀘어 설립 때는 창립 멤버로 투자지원센터장을 맡아 법무, 재무 등을 총괄했다. 2024년부터는 SKT 대외협력 사장으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대관(CR)·홍보(PR) 기능을 챙겼다. SK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거버넌스위원장을 맡아 그룹 경영 시스템 선진화를 이끌었다.

내부 컴플라이언스 강화와 고객 신뢰 회복
2025년 4월 발생한 유심 해킹 사태는 SKT를 뿌리부터 흔들었다. 2696만건의 유심 정보가 유출됐고 핵심 서버에 악성코드가 장기간 잠복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보안 관리 부실 논란이 일었다. 개인정보 유출 관련 집단소송 참여자가 수만명에 달했고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1348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SKT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에 나설 것을 검토 중이다.

3분기 실적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90.9% 감소했고, 과징금과 보상 비용으로 1667억원 순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전환했다. SKT 역사상 최악의 보안 사고로 꼽힌다.

SKT는 유심 해킹 사태 이후 고객신뢰회복위원회를 구성해 운영 중이다. 외부 전문가와 소비자단체가 참여하는 이 위원회는 재발 방지 대책과 고객 보상, 보안 체계 개선 방안을 논의한다. 정 사장은 이 위원회 운영을 직접 챙기며 고객과의 신뢰 회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법조인 출신 CEO를 택한 배경에는 다층적 법적 리스크 관리 필요성이 있다. 현재 SKT는 개인정보위로부터 부과받은 1348억원 과징금에 대한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고, 수천 명의 가입자가 집단분쟁조정을 신청한 상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개인정보위 등 다수 규제기관도 관리해야 한다. 법조인 출신 CEO는 이런 리스크를 사전에 파악하고 관리하는 '수비형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는 평가다.

정 사장은 법조계 경험을 바탕으로 규제 당국과의 소통에서도 강점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 관계자는 "AI 전환과 기술 투자 못지않게 당분간은 사고 수습, 규제 대응, 대관 관리가 경영의 핵심 과제"라며 "리스크 통제 중심의 경영 안정화가 선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사장이 과거 SK스퀘어 투자지원센터장으로 재직할 당시 추진했던 경영 인프라 체계 구축, 이사회 중심 경영, ESG 및 법무·컴플라이언스 체계 정비 등의 경험도 주목받고 있다. 정 사장은 SKT에서도 내부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조직 내실을 다지는 데 공을 들여왔다.

CIC 체제로 역할 분리
정 사장은 취임과 동시에 여러 전선에서 싸워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유심 해킹 사태 후속 대응과 고객신뢰회복위원회 운영, 법적 분쟁 관리가 급선무다. 중장기적으로는 AI 전환 과제를 마무리해야 한다. 법조 출신 CEO로서 조직 내부의 컴플라이언스를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규제기관과의 관계를 복원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다.

다만 정 사장이 사업을 직접 진두지휘하기보다는 전사적 관리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SKT는 이번 인사를 통해 AI CIC와 통신 CIC라는 두 개의 사내독립기업(CIC) 체제로 재편됐다. 통신 CIC장에는 SK스퀘어 대표를 지냈던 한명진 사장이 부임했다.

AI CIC의 경우 기존에 유영상 전 CEO가 맡았다. 유 전 CEO가 지주사 SK수펙스추구협의회 AI위원장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AI 전문가를 영입하거나 유 전 CEO가 겸직을 이어갈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이는 리스크 관리의 연장선으로도 해석된다. 유심 해킹 사태 이후 SKT는 기술적 보안 강화뿐 아니라 조직 전반의 관리 체계 재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정 사장은 그동안 SKT와 SK스퀘어 등을 거치며 회사 전반의 지원 기능을 총괄한 경험이 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SKT 내부 관리 시스템을 정비하고 CIC장들이 사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