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 KAIST 교수 인터뷰
산불 등 보며 사회적 책임 느껴… 광합성 많이 하게 유전자 조작
네이처 플랜트에 연구 결과 발표
“탄소순환 고리 엽록체 조절 땐… 지구의 탄소 흐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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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만난 김진수 KAIST 교수. ‘툴젠’을 비롯해 ‘그린진’ ‘엣진’을 창업한 김 교수는 유전자가위 분야 세계적인 권위자다. 2022년 싱가포르국립대 초빙교수로 한국을 떠났던 그는 올해 초 연구비 확보를 전제로 정년과 관계없이 연구할 수 있는 ‘정년 후 교수 제도’로 KAIST에 부임했다. KAIST 제공“딸아이가 90대가 되는 세기말, 지구가 불타는 지옥이라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불행하겠죠. 딸이 행복하게 늙어가길 바랍니다. 제가 평생 다뤄온 ‘유전자교정’ 기술을 질병 치료에서 기후위기 대응 기술로 확장하려는 이유입니다.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이라 생각하고 깃발을 들겠습니다.”

추석 연휴 전 서울 금천구 그린진 본사에서 만난 김진수 KAIST 교수(61)는 새로운 목표를 밝히며 눈을 반짝였다. 이제 막 연구의 첫발을 내딛는 연구 초년생 같았다.

김 교수는 유전자가위 분야 세계적인 권위자다. 생명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3세대 유전자가위 기술인 ‘크리스퍼 캐스9(CRISPR-Cas9)’을 서울대 교수 시절이던 2012년 가장 먼저 진핵세포(세포 내 핵으로 대표되는 세포소기관을 가진 세포) 단계에서 실험하고 특허를 출원했다. 크리스퍼 캐스9은 교정이 필요한 DNA 염기를 정확히 찾아 잘라내는 기술이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가 전 세계에서 주목받으면서 2018년부터 그는 국내에서 특허권과 연구비 논란을 겪으며 수사와 재판을 거쳐야 했다. 결국 ‘수천억 원 가치의 특허를 빼돌렸다’는 주요 혐의에서 1·2심, 그리고 2022년 말 3심에서도 모두 무죄를 받았다.

지난한 재판을 치르는 동안 경쟁하던 과학자들은 2020년 크리스퍼 캐스9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2022년 싱가포르국립대 초빙교수로 한국을 떠났던 그는 올해 초 연구비 확보를 전제로 정년과 관계없이 연구할 수 있는 ‘정년 후 교수 제도’로 KAIST에 부임했다. 그리고 9월 자신이 창업한 ‘툴젠’ 주식 8만5000주를 KAIST에 기부했다. 현재 가치는 약 58억 원이다.

김 교수는 최근 난치 유전질환 치료제로 떠오르는 유전자가위 기술로 기후위기 해결에 도전하고 있다. 그는 “전시 상황처럼 보이는 대규모 산불, 가뭄과 폭우 같은 극한 기후 사례를 보며 기후위기를 과학자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전자가위와 기후위기 해결의 연결고리는 식물의 광합성이다. 식물의 엽록체는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광합성을 하고 탄수화물을 만든다. 동물은 이 식물을 섭취해 미토콘드리아에서 에너지를 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다시 식물이 흡수하는 순환이 이어진다. 유전자가위로 광합성과 이산화탄소 흡수 효율을 높인 작물이나 나무 품종을 개발하면 곡물 생산성이 크게 오르고 탄소 포집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기후위기와 식량위기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셈이다. 지속가능항공유(SAF) 원료로 쓸 수 있는 작물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김 교수는 이미 ‘2세대 유전자가위’로 불리는 탈렌(TALEN, 유전자 편집기술)을 변형한 새 유전자 교정 기술로 식물 속 엽록체와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를 직접 교정하는 데 성공하고 연구 결과를 ‘네이처 플랜트’ ‘셀’ 등에 발표했다. 그는 “엽록체와 미토콘드리아가 지구 탄소순환의 연결고리로 이 고리를 조절해 지구의 탄소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유전자가위처럼 한국이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 전 세계를 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6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10대 기술 중 하나로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유전자교정 기술을 선정하며 ‘핵심 연구진’이 서울대 연구팀이라고 적시했다. 그는 “2010년대 중반까지 한국은 유전자가위 연구에서 선도국이었다”며 “현재 미국에서 ‘카스제비(CASGEVY)’ 같은 유전자가위 치료제가 출시되고, 일본에서 유전자 교정 어류가 판매되고 있지만 한국에선 ‘유전자조작물(GMO)’로 분류해 연구가 상용화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연구 가치는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원천기술에서 파생된 유전자교정 기술인 ‘RNP’는 크리스퍼 테라퓨틱스, 에디타스 메디슨 등 해외 바이오기업이 실험적 유전자 교정 플랫폼에 활용하는 핵심 기술이다. 이식용 이종장기 개발에서도 RNP가 쓰이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과학자가 불안정한 직업으로 인식되며 한국 청년들이 과학자를 직업으로 선택하지 않는다고 본다”며 “새로운 연구를 선도하며 후배들에게 행복한 과학자로 기억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