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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 요트에서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123rf]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자기 돈 쓰는 게 무슨 잘못이야?”

최대 수천억원을 호가하는 거대 요트와 제트기. ‘억만장자’로 일컬어지는 전 세계 초부유층의 상징과 같은 사치품이다.

단순히 사치스럽다고 해서 무작정 비난하기는 힘들다. 물품에 걸맞은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

하지만 여기에는 ‘맹점’이 있다. 부유층의 소비가 유발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탄소배출량. 이에 따른 기후변화 피해 비용이 가격에 포함돼 있지 않은 것.

개인용 비행기 내부 모습.[X(구 트위터) 갈무리]


실제 일부 부유층이 환경오염에 미치는 영향은 평범한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상위 0.1% 부유층이 하루에 배출하는 탄소량이 인구 절반이 1년간 내뿜는 양보다 많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문제는 부유층이 유발한 기후변화의 피해가 가난한 사람들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 일각에서는 ‘기후 불평등’을 넘어 ‘기후 약탈’의 시대로 진입했다는 진단도 나온다.

항구에 요트가 정박해 있다.[123rf]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은 11월 브라질에서 열리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을 앞두고 ‘기후 약탈: 소수의 사람이 어떻게 세계를 재앙으로 몰아넣는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소득·소비를 기반으로 추산한 개인별 탄소배출량 분석 결과가 담겼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탄소배출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990년 이후 상위 1%의 부유층은 하위 50%와 비교해 100배 이상의 탄소를 배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위 10%와 비교했을 때는 최대 300배 이상 탄소배출량 차이가 벌어졌다.

전용기를 탑승하는 모습.[123rf]


기준을 상위 0.1% ‘억만장자’로 하면, 그 차이는 더 명백해진다. 상위 0.1% 부유층은 1인당 매일 800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하위 50% 해당하는 사람들은 하루 1인당 2kg, 1년간 730kg의 탄소를 배출했다.

이를 고려하면, 상위 0.1% 부유층이 하루 동안 배출하는 탄소가 하위 50%의 1년간 배출하는 양보다 많은 셈. 심지어 이같은 격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가속화되고 있다. 탄소배출량에서 부유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석탄화력발전소.[헤럴드DB]


실제 1990년부터 2023년까지 상위 0.1% 부유충의 1인당 배출량은 연간 92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하위 50%의 탄소배출량은 0.1톤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전체 탄소배출량에서 상위 0.1%가 차지하는 비중은 4%대에서 6%대까지 상승했다. 하위 50%의 점유율은 8%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같이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는 최상위 부유층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 실제 ‘억만장자’들의 상징물과 같은 거대 요트, 개인 비행기 등이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규모만 살펴봐도, 그 격차를 체감할 수 있다.

요트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123rf]


지난해 발간된 옥스팜 ‘탄소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50위권 내 부유층이 보유한 대형 요트 23대의 연간 탄소배출량은 평균 5672톤으로 집계됐다. 아울러 전용기를 소유한 부자는 23명. 그들이 전용기 이용으로 배출하는 탄소량은 연평균 2047톤으로 산출됐다.

요트가 내뿜는 탄소배출량 5672톤은 일반인 한 명이 약 860년 동안 배출하는 양에 해당한다. 만약 평범한 사람들이 상위 1% 부유층처럼 소비하고, 똑같은 탄소를 내뿜는다고 가정하면 탄소예산은 단 3개월 만에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매연을 내뿜는 공장.[123rf]


탄소예산은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을 1.5도 내로 억제하기 위해 배출할 수 있는 탄소량을 말한다. 기후변화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기까지 우리가 가진 자원을 부유층이 유독 많이 사용하고 있는 셈.

또 부유층이 유발하는 ‘기후변화’는 소비에만 그치지 않는다. 가장 큰 차이가 투자에서 벌어진다. 부유층들이 탄소배출을 유발하는 기업들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기 때문. 옥스팜이 조사한 전 세계 222명 억만장자의 투자액 중 60%는 광산, 석유·가스회사 등 기후에 영향이 큰 기업의 몫이었다.

인도네시아 자와 틍아주 데막군 한 해안가 마을의 해수면 상승이 진행되고 있다.[그린피스 제공]


주목할 점은 부유층이 유발한 ‘기후변화’가 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피해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 실제 지난 30년간 상위 1% 부유층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매년 1450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의 작물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됐다.

기후변화로 인한 기후재난 발생 등 직접적인 피해도 적지 않다. 향후 1세기 동안 상위 1% 부유층이 배출한 온실가스를 요인으로 한 기온 상승을 분석한 결과, 전 세계에서 열 관련 사망자는 13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부자들의 무분별한 소비·투자가 평범한 이들의 생사까지 좌우하는 셈.

서울 중구 서울로7017 고가교에서 시민들이 양산과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지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이에 부유층을 대상으로 탄소배출량 축소를 요구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온다. 기후변화를 유발한 책임을 비중에 맞게 물어야 한다는 게 취지다. 여기에는 개인용 요트, 비행기와 같은 고급 제품의 세금을 인상하거나 제재를 가하는 것부터 소득과 재산에 영구적 누진세를 도입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옥스팜은 “규제 없는 자유시장과 이윤 추구 성장을 강조하는 시스템은 부자들에만 힘을 실어주고, 다른 사람들과 지구를 희생시키고 있다”며 “지속 불가능한 부유층의 소비를 대폭 억제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충분성과 형평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