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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업들 복잡하게 얽힌 순환 거래 구조
기술 협력으로 발전이냐
AI 버블 초래할지 논란

앤스로픽./로이터 연합뉴스
오픈AI의 주요 경쟁사로 꼽히는 AI(인공지능) 스타트업 앤스로픽이 23일 구글과 클라우드(가상 서버) 이용 확대를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으로 앤스로픽은 구글이 맞춤 설계한 자체 칩 ‘텐서 프로세싱 유닛(TPU)’을 최대 100만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내년 1GW(기가와트)가 넘는 AI 컴퓨팅 용량을 온라인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계약 규모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앤스로픽은 “수천억 달러(수백조원)에 달한다”고 했다.

이번 계약을 두고 테크 업계에서는 “AI 업계에서 순환 거래가 확대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구글은 앤스로픽의 투자자 중 하나다. 지금까지 약 30억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은 앤스로픽이 다시 막대한 돈을 주고 구글의 칩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구조다. 이런 순환 구조를 두고 AI 업계에서는 ‘AI 버블’인지 ‘윈윈 전략’인지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순환 거래는 A란 회사가 B 회사에 돈을 지불하면, B사가 A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자금 조달 방식은 투자나 대출, 리스 등의 형태가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이런 순환 거래는 통신 장비 제조 업체가 고객에게 대출이나 신용을 제공하고, 고객이 장비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했다.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점도 있지만, 고객사가 파산하면 거품이 터지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AI 업계에서는 이런 구조와 비슷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엔비디아는 최근 오픈AI에 100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오픈AI는 이 자금으로 엔비디아의 칩을 사거나 임차(리스)할 계획이다. 오픈AI는 미국 내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해 오러클과 3000억달러 규모 계약을 맺었는데, 오러클은 엔비디아의 칩 구매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돈이 결국은 순환돼 다시 엔비디아로 돌아가는 것이다.

엔비디아 경쟁사인 AMD도 오픈AI와 대규모 GPU(그래픽 처리 장치) 계약을 체결했다. 오픈AI는 향후 성과에 따라 주당 1센트에 AMD 주식 최대 1억6000만주를 매입하는 권리를 갖게 됐다. 전체 발행 주식의 10%다. AI 인프라 기업인 코어위브도 대표적 순환 거래 사례로 꼽힌다. 엔비디아는 코어위브 지분 5%를 가지고 있고, 코어위브는 엔비디아의 칩을 사들이고 있다.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MS), 엔비디아, AMD, 오라클 등 주요 빅테크만 보더라도 자금 흐름이 복잡하다. 여기에 투자자 인프라 기업, 소프트웨어 기업, 서비스 기업 등 다른 AI 관련 기업들도 투자와 협업을 앞다퉈 발표하고 있다. AI 생태계 속 기업들 사이에 돈이 오가는 구조는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다. 투자 금액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순환 거래를 놓고 갑론을박이다. 먼저 AI 기업들 간의 협력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오픈AI와의 파트너십이 “선순환적이고 긍정적인 순환”이라고 말했다. 오픈AI 공동 창업자인 그레그 브록먼은 챗GPT를 지원하는 데 필요한 엄청난 컴퓨팅 성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AI 공급망 전체를 활용하는 업계 전체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AI 기업들이 기술 협력을 통해 본격 수익을 내기 시작하면, AI 생태계가 안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닷컴 버블 때처럼 AI 버블에 대한 우려도 크다. 어느 한 곳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전체 기업이 도미노처럼 쓰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오픈AI의 기업 가치는 5000억달러로 평가되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 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오픈AI를 비롯해 신생 AI 기업들이 데이터센터와 서비스에 수천억 달러 투자를 공표했지만, 이 자금을 실제 조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도 크다.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선임 연구원인 파울로 카르바오는 블룸버그에 “오늘날 AI 기업들은 실질적인 제품과 고객을 보유하고 있지만, 지출은 여전히 수익 창출 속도를 앞지르고 있다”고 했다. 블룸버그는 “AI 인프라에 대한 과대광고는 주식부터 부동산과 에너지에 이르기까지 시장 전반에 걸쳐 파급되고 있으며, 경제의 거의 모든 영역이 위태로워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