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톡]
루센트블록, 조각 투자 시장 개척해 시장성 입증
NXT, 투자 검토용이라며 기밀 받고 시장 진출
업계 “이러니 창업하려고 하겠나”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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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레이드(NXT)와 루센트블록이 체결한 '기밀유지 계약서'/루센트블록
공적 기능을 하는 한국거래소(KRX)와 국내 최초 대체 거래소인 넥스트레이드(NXT)가 최근 토큰 증권(STO) 사업 진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STO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실제 금융 자산(주식·채권 등)과 실물 자산(부동산 등)의 권리를 작은 단위로 거래(조각 투자)할 수 있도록 디지털 토큰 형태로 발행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그런데 스타트업 업계에선 “지난 7년간 스타트업이 피땀 흘려 터를 닦아 놓았더니 공공성을 가진 사업자가 밀고 들어와 밥그릇을 가로채려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앞서 2018년 20대 국회에서 금융혁신지원특별법(특별법)에 따라 규제 샌드박스(일정 기간 규제를 면제해 주는 제도)가 만들어지자 허세영 루센트블록 대표는 조각 투자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이 회사는 창업 이후 각종 승인을 받고 플랫폼을 준비하는 데 3년 반을 투자했고 4년 전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허 대표는 “새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결과 약 50만 고객을 유치했고 누적 약 300억원의 공모를 완료했다”고 말했습니다. 시장성이 입증되자 당국에서도 혁신법 취지대로 올해 들어 법제화를 완료했고 루센트블록도 인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KRX와 NXT가 루센트블록이 시장성을 입증한 이 시장에 뛰어들겠다고 하면서 상황이 꼬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 NXT는 “루센트블록의 컨소시엄에 참여를 검토해 보겠다”며 “NXT는 이번에 STO 시장에 뛰어들지 않겠다”고 구두 약속했고, 루센트블록은 기술·영업 전략 등 회사 관련 기밀을 모두 NXT에 넘겼다고 합니다. 컨소시엄 참여 검토에만 이 정보를 활용한다는 기밀 유지 계약서(NDA)도 체결했습니다.

루센트블록의 자료를 들여다본 NXT는 지난 15일 갑자기 증권사들에 STO 사업에 진출하겠다며 컨소시엄 참여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합니다. 투자 검토에만 취득한 정보를 활용하겠다고 해놓고 루센트블록의 뒤통수를 친 것입니다. 이에 대해 NXT 관계자는 “NXT는 2022년 11월 법인 설립 이후부터 주식 거래 이외에도 토큰 증권, 상장지수펀드 등으로 거래 자산을 확대할 계획을 표명해 왔다”면서 “루센트블록에서 받은 자료는 투자 의향이 있는 법인에 공통으로 제공되는 일반적인 자료고, 특별히 민감한 자료가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KRX도 한 달 전쯤 STO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발표하며 증권사에 컨소시엄 참여 의향을 전달했습니다. 스타트업 업계에선 “조사권과 징계권이 있는 한국거래소가 증권사들에 컨소시엄 참여를 요구하는 건 부당한 압력 행사”라며 “공정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한국거래소 측은 “STO 유통 시장 활성화를 위한 단순 지분 참여에 불과하다”는 입장입니다.

특별법 제정 당시 국회와 정부는 해당 사업이 법제화된 이후 대형 금융 업체들이 사업 모델을 모방할 수 있다고 우려해 루센트블록처럼 실증에 참여한 혁신 금융 사업자에 법제화 이후 최대 2년의 배타적 운영권을 부여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스타트업 업계에선 “KRX와 NXT가 금융 업계에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위를 활용해 루센트블록이 인가를 못 받도록 만들어 배타적 운영권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KRX와 NXT가 이 시장에 뛰어들면 7년간 루센트블록이 공들여 키운 나무에서 열린 열매를 가로채는 셈이 됩니다. “이런 나라에서 누가 창업하려고 하겠느냐”는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