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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조정 대상된 기업부설硏
2년새 3624곳 ↓···7개월째 순감
정부 현장실사 등 감시 강화 수순
경기 악화에 中企연구소도 제약
투자유치·국책과제 선정 어려워져
"기업 연구자 재단 등 대책 마련"

[서울경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씨는 최근 5년 넘게 유지해온 기업부설연구소를 없애기로 했다. 정부 실사에서 ‘조건부 취소’ 처분을 받았기 때문이다. A씨는 “연구소를 취소하면 세제 공제 혜택을 잃지만, 일정 인력을 계속 고용해야 하고 관리 차원에서 외부 컨설팅까지 받아야 한다”며 “혜택보다 부담이 커 결국 없애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간 폭발적으로 늘었던 기업부설연구소가 최근 급격히 줄고 있다. 특히 바이오·헬스케어 업계와 스타트업 업계를 중심으로 한 ‘무늬만 연구소’, ‘서류용 연구소’들이 정부의 대대적인 실사와 제도 개편 과정에서 대거 퇴출되는 중이다.

27일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KOITA)에 따르면 국내 기업부설연구소는 2023년 4만4086곳에서 2025년 9월 기준 4만462곳으로 8.9% 감소했다. 특히 중소기업 감소세가 두드러진다. 대기업 기업부설연구소 수는 같은 기간 756곳에서 710곳으로 6% 줄었지만, 중소기업은 4만1717곳에서 3만7932곳으로 9% 감소했다.

기업부설연구소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연구개발(R&D) 인프라를 갖추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승인을 받아 연구개발비 세액공제와 정부 과제 가점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코로나19 시기 세제 혜택을 노리고 최소 인력만 갖춰 형식적으로 설립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눈속임 연구소’라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일부 사무실 한켠에 책상만 두고 연구공간으로 등록하거나 겸직 인력을 연구원으로 등록해 유지하는 기업이 적발돼 논란이 되자 정부는 인정 요건과 사후 관리 기준을 전면 강화하고 부실 연구소를 퇴출했다.

기업부설연구소를 세우기 위해서는 기업 규모별로 2~10명의 전담 연구요원을 상시 고용해야 한다. 독립된 연구공간과 기자재를 확보해야 하며 겸직 인력이나 공용 사무공간은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연구개발 실적을 2년 연속 보고하지 않거나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연구소는 등록을 취소한다. 정부는 이같은 강화 조치가 실제로 이행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올해 3만 건 이상의 실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올해 3월부터 9월까지 7개월 연속 신규 설립보다 취소가 더 많은 ‘순감’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단순한 경기 침체나 일시적 감소가 아니라 정부의 부실 연구소 정리 정책과 기업의 전략 변화가 맞물린 구조적 조정의 시작”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이 혁신 역량이 있는 중소기업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중소 기업의 경우 기업 연구소를 통해 연구 개발을 늘리고 투자를 확대해야 하는데, 연구소를 없애면 투자를 늘리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부가 주도하는 국책 과제에 도전할 수 없다. 특히 최근 경기 악화로 일시적으로 연구소를 제대로 운영하기 어려운 기업이 많아졌는데, 이러한 기업까지도 연구소 취소 위기에 처하면서 정부 과제 참여와 투자 유치 등에 제약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조용희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원은 논문을 통해 “벤처 기업 중 기업부설연구소의 인정 취소 기업의 대부분은 벤처기업과 같은 신생기업이고, 이러한 기업의 경우 인정 취소 이후 사멸(휴·폐업)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도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업부설연구소 운영을 명문화한 하위법령 제정을 추진 중이다. 아울러 기업 연구자에 대한 포상, 전문성 강화 교육, 업스킬링·리스킬링 연수 등을 지원하기 위한 ‘기업연구자 육성 재단(가칭)’ 설립도 검토하고 있다. 기업 연구자에 대한 사회적 보상과 성장 지원 체계를 마련해, 단순한 연구소 수 축소가 아닌 ‘질적 혁신 생태계 전환’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취지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민간에서 인력을 양성해야 하고 기술사업화도 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인데 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기업들의 부담이 큰 것으로 파악된다”며 “기술 잠재력이 높은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맞춤형 인력 지원과 교육을 확대하기 위한 목표”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