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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ficial intelligence with human brain circuit electric background. Digital futuristic big data and machine learning. vector banner art illustration.
‘프런티어 모델’. 최근 인공지능 관련 보도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용어다. 널리 알려진 오픈에이아이(AI)의 챗지피티, 구글의 제미나이, 앤스로픽의 클로드 등이 이에 해당한다. 개발 예산, 기반 하드웨어, 기술적 스케일 모두에서 압도적인 규모를 갖춘 범용 모델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이들 모델을 ‘프런티어’, 즉 최첨단이라고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기존 모델이 수행할 수 없었던 다양한 과업을 해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 7월 구글 딥마인드는 심층 사고 기능을 갖춘 제미나이의 고급 버전이 2025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리스트 수준의 성능을 발휘했다고 발표했다. 그간 인공지능 모델의 약점으로 지적되어 온 수학 능력에 있어 큰 진전을 이룬 것이다.

대중의 관심 또한 이러한 최첨단 모델에 집중된다. 새로운 모델이 출시될 때마다 어떤 기능이 추가되었는지, 가장 놀라운 점은 무엇인지 등의 정보가 오간다. 상세한 소식을 전하는 전문가들이 있지만, 논의의 방향은 그리 다르지 않다. 이들의 관심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떤 모델이 더 뛰어난가?”, “누가 1등인가?”라고 할 수 있다.

‘최첨단’에 대한 집착 속에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빠져 있다. 새로운 모델이 발명되는 속도만큼 우리의 삶은 더 나아질까? 기술발전은 사회를 더욱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까? 한마디로 답할 수는 없지만 여러 연구가 보여주는 바는 자명하다. 기술의 발명과 실질적인 효용 사이에는 상당한 시차가 있으며, 기술의 확산이 모두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 불평등의 심화를 막기 위해서는 제도와 문화, 정치의 역할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결국 기술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2024년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 대런 애쓰모글루는 2021년 미 하원 경제 불균형 및 성장 공정성 특별위원회에서 의미심장한 증언을 한다. 산업용 로봇 채택이 빠르게 진행된 지역 노동 시장에서 고학력 노동자와 저학력 노동자 간의 불평등이 심화하였고, 소득 분포 상위와 하위 집단 간 격차가 더 크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는 자동화로 생산성이 증가했지만 불평등도 심화하였음을 보여준다.

대다수는 인공지능이 업무 효율성을 제고하면서 노동시간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이번 달 발표된 ‘인공지능과 연장된 근로시간: 생산성, 계약 효율성, 그리고 지대의 분배’라는 연구는 인공지능의 확산이 뜻밖의 결과로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 노동통계국의 시간 사용 조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인데, 인공지능에 많이 노출되는 노동자일수록 더 오래 일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구체적으로 2023년을 전년도와 비교하면 인공지능 노출이 하위 25%에서 상위 25% 수준으로 커질 때, 주당 근로시간은 약 3.75시간 늘고 여가는 약 3.85시간 줄었다.

새로움에 대한 주목이 유희와 경쟁이 되어버린 시대, 최신 기술에의 과도한 관심은 인공지능이 우리 삶을 실제로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을 잠식한다. 거대 기술자본의 승전가를 따라 부르는 목소리 속에서 사회의 취약한 부분을 살필 마음도 자원도 흩어진다. 이제 삶을 배신하는 기술을 경계하면서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틀을 ‘기술의 최첨단’이 아니라 ‘삶의 최전선’으로 바꾸어야 한다. 프런티어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아니라 일상과 관계를 돌보고 노동과 복지의 실상을 마주하겠다는 다짐이 필요하다. 최첨단 기술이 닦아 줄 탄탄대로 따위는 없다. 함께 걷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는 것이다.

김성우 응용언어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