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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 10일 화재 피해 복구작업이 진행 중인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본원을 찾아 화재 발생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제공]
최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와 잇단 행정망 마비 사태를 계기로 공공 IT 사업의 발주 구조를 '가격 중심'에서 '기술 중심'으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IT 서비스 업계는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을 시스템 노후화가 아닌, 기술력과 안정성보다 '가격'을 앞세운 낡은 조달 제도에서 찾는다.

현행 공공 IT 사업자 선정 방식은 '기술·가격 종합평가제'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가격 점수가 사실상 당락을 결정한다.

한 IT 서비스 업계 관계자는 “기술 점수는 대부분 상향 평준화돼 변별력이 없고, 결과적으로 '입찰 노하우'에 능한 일부 업체가 사업을 돌아가며 수주하는 '고인물 구조'가 된 지 오래”라며 “국정자원이 발주하는 서버 관제·운영 사업 대부분이 이렇다”고 설명했다.

낙찰을 위해 비현실적인 단가를 써내는 저가 수주 경쟁이 일상화되면서, 품질 저하와 하도급 구조는 고착됐다. 저연차 인력 투입, 불완전한 개발, 사후 관리 부실이 반복되며 장애 발생 시 복구가 늦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IT 서비스 업계 다른 관계자는 “국가 핵심 인프라에 '싼 게 비지떡'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라며 “예산 절감이 아니라 리스크 전가 구조가 됐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가치 기반' 평가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가격보다 제안 기술의 완성도·안정성·운영계획을 종합 평가해 비현실적 저가 제안을 자동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의 'G-클라우드(G-Cloud)'는 공공기관이 단순 최저가가 아닌 가격·품질·사회적 가치를 함께 고려해 클라우드 서비스를 선택하도록 설계됐다.

정부가 서비스 품질과 안정성을 사전에 검증해 등록하고, 기관은 이를 직접 선택·구매하는 구조로, '기술 중심 평가' 원칙을 제도화한 사례로 꼽힌다.

개발과 운영을 분리하는 관행도 개선 대상이다. 현재 구조에서는 구축사와 운영사가 달라 책임이 분산되고, 장애 원인 규명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스템 구축부터 운영까지 일괄 책임지는 엔드투엔드 통합 발주제와 정량적 서비스수준협약(SLA) 관리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클라우드 업계 고위 관계자는 “복구시간·가용성·보안취약점 개선율 등 구체적 지표를 기반으로 성과를 평가하는 성과계약(PB) 제도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기술 중심 평가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발주기관의 기술 평가 역량 강화가 요구된다.

소프트웨어 업계 관계자는 “기술 전문성이 부족한 공무원이 수백억원 규모의 제안을 평가한다는 건 현실과 동떨어진다”며 “민간 프로젝트 관리조직(PMO) 참여를 의무화해 발주처의 판단을 보완하는 게 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PMO를 감리와 분리해서 인공지능(AI), 보안, 클라우드 등 분야별 전문분과 평가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있다.

한 공공기관 IT 담당자는 “지금의 조달 제도는 IT 사업을 단순 '물건 구매'로 취급한다”며 “공공 IT는 예산 절감 대상이 아니라 국가 신뢰와 직결되는 '핵심 인프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기술을 식별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안목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디지털 대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료= 업계 취재 종합]